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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인들이 사는 나라』 출간 30주년을 기념하며 2020-12-03 15:54:28



아주 오랜 기억이 바로 어제 일처럼 되살아날 때가 있습니다. 30년 전 첫 시집 『거인들이 사는 나라』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흥은 너무나 각별하여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마도 출판사에서 나에게 출간 소식을 일부러 알리지 않았었나 봅니다. 종로서적 6층 시집 신간 코너에 진열된 『거인들이 사는 나라』를 처음 발견한 순간, 가슴이 얼마나 뛰던지 나는 숨이 거의 멎을 것만 같았습니다. 내 생애 최고로 가슴 벅찬 날이었지요. 그런데 어느새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이번에 『거인들이 사는 나라』 출간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판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때때로 오래 된 것은 다시 새 것이 되어 돌아오곤 합니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들은 하도 여러 가지여서 최초엔 화가였으나 고고학자·성악가·영문학자로 바뀌다가 맨 나중엔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지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문학을 전공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치의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치과의사가 되는 길에 접어들면서 어쩌면 시인이 되는 길을 영영 놓쳐 버릴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혼자서 열심히 시 공부를 했습니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모두 시를 읽고 쓰는 일로 채웠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온통 시만을 생각했지요. 그래서인지, 뜻밖에도 아주 일찍이 대학교 1학년 때 아동문학 문예지 <아동문예>와 <새벗>의 신인문학상에 연달아 동시가 당선되어 마침내 시인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전공은 아동문학이요, 부전공이 치의학”이라는 말을 농담 삼아 했는데, 6년간 치의학 전공과 시 창작을 병행하여 마침내 대학 졸업과 때맞추어 첫 시집 『거인들이 사는 나라』(진선출판사, 1990)를 펴냈습니다.

그즈음에도 시집 출간의 기회를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도 세 번째로 투고한 곳에서 출간 제의를 받았는데, 동시이지만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일반 시집 형태로 출간하자는 출판사 측의 제의를 받아들였지요. 그렇게 출간된 첫 시집은 꽤 많은 성인 독자들을 확보했지만, 아쉽게도 아이들에게 널리 읽힐 기회는 잃고 말았습니다. 몇 년 후, 그 출판사는 시집 시리즈를 중단했고 첫 시집 『거인들이 사는 나라』도 절판이 되었지요.

그로부터 10여 년 후 내가 아동청소년문학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게 되면서, 나중에 쓴 시들을 좀 더 보태어 마침내 동시집(푸른책들, 2000)으로 다시 펴낼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두 차례의 개정판(2006, 2015)과 문고본(네버엔딩스토리, 2010)으로 거듭 펴내면서, 새로운 독자들에게 읽힐 기회를 꾸준히 가졌지요. 어쩌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출간하는 일에 주력하는 출판인으로서, 내 작품을 스스로 돌보고 가꾸는 일에 열중했던 유일한 경우가 바로 『거인들이 사는 나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 시를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이 더욱 좋아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져, 그동안 『거인들이 사는 나라』는 쇄를 거듭하여 10만 이상의 독자를 확보하며 많은 아이들이 즐겨 읽는 동시집이 되었습니다. 이 일은, 내 시 9편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일과 더불어 내 삶에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안겨 주었지요.

이번에 『거인들이 사는 나라』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을 펴내면서,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다시 일반 시집의 형식으로 일부 바꿔 보았습니다. 처음 출간했을 때처럼 ‘얼른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뿐 아니라 ‘다시 아이가 되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래 된 시작 노트를 뒤져 그동안 시집에 한 번도 엮지 않고 묻어 두었던 시 13편을 꺼내어 제5부에 추가하였습니다. 제3부에 실린 시들과 비슷한 시기에 쓰인 초기작들이어서 좀 어눌하지만 풋풋한 느낌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이 끝없이 반짝이고 출렁이던 시절의 흔적이어서 다시 세상으로 끌어내는 동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동시대에 같은 길을 가는 분들과 『거인들이 사는 나라』 출간 30주년을 기념하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선후배 시인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청해 책 끝에 실었습니다. 어려운 청에 기꺼이 화답해 정겨운 마음을 아낌없이 나눠 주시고 소중한 옛 추억까지 소환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30년 만에 새 것이 되어 다시 돌아 첫 시집 『거인들이 사는 나라』에게 새로운 독자들이 또 생기길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2020년 늦가을에, 신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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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푸른책들>의 새 임프린트 <끝없는이야기>에서 2020년 12월에 곧 출간될 신형건 동시집 <거인들이 사는 나라>(30주년 기념 특별판)에 실릴 ‘시인의 말’입니다.

♠<시집 속 시 한 편> 보러가기

♠<출간 30주년 기념 메시지-1>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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