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글 읽기
제목 <소년한국일보> -'이회영, 전 재산을 바쳐 독립군을 키우다' 미디어리뷰 2018-04-20 15:23:55
대표이미지 lee_c.jpg (file size 153KB)

대표이미지

* 소년한국일보 (15.05.10)

[화제의 책] 재산도 목숨도 모두 조국에 바친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이회영, 전 재산을 바쳐 독립군을 키우다

윤봉길, 안창호, 유관순…. 어린이들도 잘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이다. 하지만 1900년대 초, 우리나라에 독립의 등불을 밝힌 인물들 중 이제껏 잘 알려지지 않은 분들도 있다. 인물 동화’이회영, 전 재산을 바쳐 독립군을 키우다’의 주인공인 우당 이회영(1867~1932) 선생도 그중 한 명이다. 대대로 높은 관직을 지냈기에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명문가이자 부자로 손꼽히던 선생은 한일 합방이 되자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노비 문서를 모두 불살라 버린다. 그리고 곧바로 중국으로 건너가 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다 붙잡혀 싸늘한 주검으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우리 역사 교과서는 물론 서점가에서도 선생의 일화를 다룬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에 쓰인 선생의 일화는 더 값지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1890년대 말 선생은 이동녕ㆍ주시경 선생과 함께 ‘우공학교’를 열고 조선을 다시 세울 주인공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선생은 학교 운영비를 위해 인삼밭을 가꾸고 있었다. 그곳에 도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란 선생에게 마을 사람들은 “일본 경찰들이 훔쳤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곧바로 일본 경찰에게 인삼 사건을 신고한 선생은 인삼 도난 사건을 법정에 끌고 가 일본 경찰이 범인임을 밝힌다.
1905년 러ㆍ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했을 때도 선생은 결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고종 황제를 비밀리에 만나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이준 열사 등 3명의 사절단을 모아 세계에 일본의 식민 야욕을 알린 것. 하지만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고종을 폐위시킨다. 결국 조선이 일본의 손에 넘어간 1910년, 우당 선생은 대대로 물려받은 모든 재산을 팔아 40만 원(오늘날의 돈으로 약 600억 원)의 독립 운동 자금를 마련하고, 50여 명의 가족과 옛 하인들을 데리고 만주로 향한다. 겨울 추위를 뚫고 삼원보에 도착한 선생은 곧 자신의 형제와 이동녕ㆍ김동삼 선생과 힘을 합쳐 ‘신흥강습소(훗날 신흥무관학교)’를 열고 3500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키운다. 1920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이끈 이들이 바로 이 학교 출신의 독립군들이었다.
‘고종 황제께서 독립 운동의 중심이 되어 주신다면….’이란 생각을 품은 선생은 한편으로는 고종을 나라 밖으로 모셔 망명 정부를 세우려 한다. 하지만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떠나자 이 계획은 사라졌다. 그 대신 3ㆍ1 운동의 기세를 몰아 여러 지사들과 상하이에 임시 정부를 세운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문제에 부딪히고 만다. 독립이라는 목적은 같지만 각자의 정치 이념은 달랐던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난 것. 이에 실망한 우당 선생은 임시 정부를 떠난다. 그리고 같은 생각의 동지들과 항일 단체를 만들어 친일파들을 직접 처단하는 등 독립 운동의 불씨를 이어간다.
선생은 6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만주에 있는 일본군 사령관을 직접 처단하려 길을 나섰다가 일본인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결국 안중근 의사가 갇혔던 여순 감옥으로 끌려간 선생은 모진 고문 끝에 1932년 11월 17일 숨을 거둔다.

링크 : http://kids.hankooki.com/lpage/book/201505/kd20150510171006125590.htm

facebook twitter hms

글 읽기
이전 <소년한국일보> -'달려라 불량감자' 미디어 리뷰 2018-04-20 15:23:08
다음 <어린이동아> 외 -'그땐 나도 우주를 헤엄칠 거야' 미디어리뷰 2018-04-20 15:25:10


최근 본 상품 (0)

배송정보
배송조회를 하시려면 송장번호를 클릭하세요
배송조회
상품명
주문번호
택배사
송장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