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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간평가단]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2019-12-27 00:59:35

“내가 죽는 그날은 아마도 이렇게 전개될 거야.” 엄마 수지가 얘기합니다. 계속해 전화가 올거라고요. 엄마에게는 한없이 어리기만 한 자식이 전화를 받아 내내 엄마는 돌아가셨다는 확인을 해주게 되겠죠. 그 모습을 상상하니 엄마는 마음이 짠합니다. 그래서 전화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충고합니다. 그래도 괜찮다고요. 슬픔에 빠져 뭘 제대로 먹지 않을까봐 걱정도 되요. 토르티야에 싸먹는 파히타 만드는 법도 알려줍니다. 양파를 산처럼 쌓아 달달달 볶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텐데 겨우 며칠 상간으로 엄마 잃은 아이의 마음이 괜찮지 않을 줄을 압니다. 그래서 진한 위스키 한 잔도 권합니다. 엄마 눈에 어린애라도 법적으로는 성인이거든요. 사람들을 들여 따뜻한 차와 샌드위치를 권하라고도 합니다. 강요는 아니에요. 내키지 않으면 하는 수 없지만 가급적이면 딸이 혼자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강아지 털도 빗겨주면 좋은데 혹시 강아지 때문에 엄마가 죽은 거라면 며칠쯤 미뤄도 좋다고 하시는군요. 참 재밌는 분이시죠?

스물둘 어쩌면 스물셋. 할리 베이트먼은 잠이 오지 않는 늦은 밤 문득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게 됩니다. 어떤 자식에게든 엄마가 없는 삶을 상상하는 건 손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할리 베이트먼에게도 그랬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그녀는 그러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그날에 대한 생각을 밀어내지 않기로 합니다. 오히려 엄마가 죽는 순간을 생생하게 그려보고 그날의 고통을 막연하나마 적극적으로 느끼고자 애씁니다. 다음날 아침을 준비하면서 할리 베이트먼은 엄마 수지 홉킨스에게 요청합니다. “엄마 지침서를 하나 써주세요. 엄마가 세상에 없을 때 내가 단계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세요. 엄마가 내 곁에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것만 같아요.” 수지 홉킨스는 크게 웃으며 승낙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죽고 난 후 딸이 뭘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지를 대비하게 하는 책을 씁니다. 딸을 위해 남긴 엄마의 삶의 처방전. 엄마의 처방전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도록 일러스트를 그린 딸. 모녀가 함께 이토록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부럽고도 멋졌어요.

죽음에 대한 인상적인 의견 하나, 기자출신이었던 엄마는 죽기 전에 부고를 미리 써놓을 생각이지만 혹시나 급작스런 죽음을 맞을 가능성을 대비해 자신의 부고에 쓰지 말아야 할 내용들을 꼼꼼하게 챙깁니다. 평화로운 임종을 맞았습니다 같은 말은 절대절대 쓰지 말 것! 고통없는 죽음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대요. 그리고 모든 죽음의 순간에 자기 나름의 모르핀을 맞을 권리가 있다는 게 엄마 수지의 가치관이었어요. 저도 부디, 죽음이 지나치게 고통스럽다면 약물의 힘이라도 빌리게 해달라고 요구하겠어요. 의견 둘, 딸 할리가 평소 공격적인 성격인건지 위로의 말에 싸우자고 덤빌까봐 걱정인가 봐요. 예를 들면 “어머니 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 같은 말에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식으로 대꾸하지 말라고 타일러요. 아무리 강한 충동이 들어도 그냥 미소 지으며 고개만 끄덕끄덕 하라구요. 사실 위로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 걸 잊으면 안될 것 같아요. 의견 셋, 고등학교 때 일기는 봐도 좋다고 공식적으로 허락을 남겨요. 딸의 재미를 위해 비밀을 많이 숨겨놓았으면 좋으련만 불륜이나 이중생활의 증거, 수백만 달러의 금고는 없다고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합니다. 자식이 없는 저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남겨야 하나 잠깐 고민이 됐어요.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저자
수지 홉킨스
출판
에프(F)
발매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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