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났다.
풍자 작가로 이름이 알려진 미국의 작가 커트 보니것.
그의 작품 『갈라파고스』와 함께.
『갈라파고스』는 서기 1986년, 지금으로부터 백만 년 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류는 3kg짜리 거대한 뇌를 가지고 있었던 시대였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제임스 웨이트라는 인물을 내보인다. 이야기의 시작은 제임스 웨이트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실들을 주절주절 말해주면서 그의 도덕성과 파렴치한 행동에 대해 매우 객관적ㅇ로 밝혀주는 듯 하면서도 세상의 변화가 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름이 다행스럽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듯 하여 살짝 실망감을 안겨준다. 커트 보니것은 제임스 웨이트란 인물을 탄생시키면서 어딘가에선가 돈에 취해 자신을 잃고, 도덕성마저 버린 한 인간의 진실을 밝히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한다.
이야기는 '세기의 자연 유람선 여행'을 떠나게 된 인물들의 상황을 설명하는 듯 하면서 자연스럽게 진화의 여정으로 전환한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관광사업의 도산이 이어지면서 바이아데다윈호 한 척만 유람선으로 존재할 뿐이다. 유람선 여행을 위해 배에 오른 이는 제임스 웨이트를 포함하여 여섯 명이 전부이다.
각자 다른 삶과 이유로 바이아데다윈호에 오른 인류 최후의 생존자들이 곧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된다는 전제가 커트 보니것이 갈라타고스 제도를 배경으로 삼은 특별한 이유가 아닐까.
갈라카고스는,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있는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 불리는 19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곳으로, 책에서도 이미 설명되어진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준 섬이다. 미국과 동떨어진 곳으로, 누군가 넘어와 조용히 살기에 딱 좋은 입지 조건이며,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는, 자신을 감추며 살아가기 안성맞춤의 장소이다. 제임스 웨이트가 운 좋은 사내라는 것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갈라파고스』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에 속하는 미래의 시간을 자유롭게 오가고, 작가 개인의 이야기까지도 끼어들기를 하는, 그것이 마치 짜여진 대본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커트 보니것의 문체에 익숙치 않은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지금의 우리가 멸망하기 직전에 살아남은 여섯명에게서 진화되었다는, 그들이 원한 여행과는 사뭇 다른 시간으로의 여행에서 만나진 이들의 인연이 지금의 인류로 진화되어 존재되어간다는 새로운 발상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다만 그가 책 속에 내세운 인물들의 개성 넘치는 삶의 모습에는 동조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바이아데다윈호는 유령선이었다.
그 배는 육지의 시계에서 벗어나 선장의 유전자와
승객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의 유전자를 싣고서,
서쪽을 향해 이제까지 백만년 동안 지속되어 온
모험을 떠나고 있었다.
237쪽
작가 커트 보니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칼라타고스 제도에서 영감을 얻어 '멸망' '진화'라는 소재를 구하고, 그것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인류 마지막 생존자와 바이아데다윈호이다. 마치 그것이 맡겨진 운명이기라도 하듯 다른 방법과 다른 이유로 선택한 '세기의 자연 유람선 여행'을 통해서 말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화법을 사용하여 과거 회상이라는 장면에서 인물의 악랄함과 이중적인 그리고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적랄하게 쏟아낸다. 그들이 가진 재주와 이중성이 그대로 진화되어 우리에게로 왔으니, 아무리 발버둥치고 도덕적인 삶을 추구할지라도 우리 인간은 비판하고 절망하고 욕심을 챙기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대신한다.
요즘은 아무도 절망감 속에서 적적하게 살아가지 않는다. 백만 년 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망감 속에서 적적하게 살아갔던 이유는, 그들의 두개골 내의 악마 같은 컴퓨터가 자제하거나 쉴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실제 삶에서는 제기될 수 없는 더 도전적인 문제들을 요구해 댔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내 생각에 오늘날까지 인류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데 있어서 결정적인 사건들과 상황들을 거의 다 설명했다. 나는 그런 사건들과 상황들을 마치 완벽한 행복으로 통하는 마지막 문에 이르기 전 거쳐야 하는 수많은 잠긴 문들을 여는 기묘한 형태의 열쇠들처럼 기억하고 있다. 293~294쪽
커트 보니것이 작가로서 진화된 인간으로서 독자에게 남기고자 한 것이 정확히 무엇이다라고 단정지을 수 없을 만큼, 나의 감성과 지적 수준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하게 한다. 다만 '세기의 자연 유람선 여행'을 떠나는 최후의 생존자 여섯 명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 그리고 진정한 자신은 감추고픈 이중성을 그들에게 씌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유머러스하고 익살스런 풍자를 풀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커트 보니것의 글을 읽어봤다는 것만으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난 나의 마음을 위안한다.
●『갈라파고스』에 쏟아진 찬사들
“인류의 계보를 쫓는 무모한 모험담. 보니것은 포스트모더니즘계의 마크 트웨인이다.” -<뉴욕타임스>
“보니것 소설 중 여태껏 최고!” -존 어빙(작가)
“엉뚱한 내용, 풍자적 유머, 별난 등장인물들. 희극적인 애가哀歌이자 역설적인 상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
“고전적 전통 속의 신랄한 풍자... 어두운 비전, 진심 어린 경고”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
“아름답고 도발적이며 시선을 사로잡는 소설이다.” -
“문체, 독창성, 그리고 비뚤어졌지만 일관된 논리의 승리. 이 소설은 보니것이 40년 동안 끈질기게 다뤄 온 모든 쟁점들과 질문들을 망라하는 그의 작품세계의 압축판이자 진화물이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고품격의 희극 그리고 슬픔과 상상력의 작품” -<덴버 포스트>
“암울하고… 독창적이고 흥미롭다.” -<피플>
“괴이한 재치와 불손한 상상력… 그리고 광범위한 기술혁신이 보네것이라는 탁월한 실험소설가를 만들었다.” -<미니애폴리스 스타 앤 트리뷴>
●‘찰스 다윈’으로 시작하여… 드디어 ‘커트 보니것’까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위대한 영감을 얻다!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있는 ‘갈라파고스 제도’는 19개의 섬과 독특한 해양 생태계로 이루어진 곳이다. 세 개의 해류가 만나고, 지진과 화산 활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해양생물의 보고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무려 1,000㎞나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의 다른 지역과 교류가 적어 그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고유한 생물들이 많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이 고립성은 다양한 분야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신들만의 의견이나 표준만 강조하다가는 사회나 시장에서 고립될 수 있는 뜻의 ‘갈라파고스화’라는 말은 이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1835년 갈라파고스 제도를 여행했던 찰스 다윈은 그곳의 고유종들을 보고 생물은 생존에 성공한 개체들의 특성을 가지고 진화한다는 ‘자연선택의 법칙’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마침내 영감을 받은 또 한 사람은 더 나아가 인류의 멸망과 신인류의 탄생을 그려 내기에 이르렀으니, 바로 미국의 가장 위대한 풍자 작가로 꼽히는 ‘커트 보니것’이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풍자 작가 커트 보니것의
‘보니것식’ 장편소설 『갈라파고스』 출간!
1952년 첫 장편소설 『자동 피아노』로 등단한 뒤 『고양이 요람』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주목받는 작가가 된 커트 보니것은 촌철살인의 유머와 풍자, 세계를 보는 독특하고 기발한 시각으로 수많은 작가와 창작자들에게 존경받는 작가이자, 마크 트웨인의 뒤를 잇는 블랙 유머의 대가로 칭송받고 있다.
또한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제5도살장』을 통해 미국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반전(反戰) 소설가로도 자리매김하였다. 그는 블랙 유머, 포스트모던, SF, 풍자의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작품들에는 이러한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한 특정 장르의 작가보다는 차라리 ‘보니것식’ 작품을 쓴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종이책의 새로운 가치를 생각하는 에프(f)에서는 이미 커트 보니것의 유일한 단편소설집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018)를 출간하며 보니것식 유머와 해학, 꿈과 낭만까지 모두 느낄 수 있는 25편의 단편소설들을 소개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욱 길고 깊어진 호흡으로 보니것식 소설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장편소설 『갈라파고스』를 선보인다.
●1986년, 인류의 갑작스런 멸망, 극소수의 생존자들
그리고 새로운 진화의 시작
지금으로부터 약 백만 년 후의 새로운 세상. 그곳에 등장한 베일에 싸인 화자는 우리를 백만 년 전인 서기 1986년으로 데려간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과 금융 위기로 인한 세계전쟁은 곧 인류를 종말로 몰아넣고, 아무것도 모른 채 갈라파고스 제도로 유람선 여행을 떠났던 몇몇의 사람들은 우연히 한 섬에 좌초되어 고립되면서 종말로부터 살아남아 완전히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된다.
커트 보니것은 『갈라파고스』에서 진화론의 대명사격인 갈라파고스를 소재로 삼아 인류의 멸망과 신인류의 탄생 과정을 그만의 독특한 서술 방식으로 보여 준다. 독자들은 인류 최후의 생존자들과 진화의 여정에 함께하며, 그가 비판하고 풍자하고자 했던 것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희망에 대해 여실히 느끼게 된다.
“3킬로그램짜리 뇌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한때는 거의 치명적인 결함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두 번째 질문도 제기하는 바이다.
“과거 그 당시, 지나치게 정교한 우리의 신경 회로를 제외한다면, 우리가 어디에서나 보고 들었던 그런 악행들이 비롯된 근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의 대답은 이러하다.
“다른 근원은 없었다. 그 엄청나게 커다란 뇌만 뺀다면, 이곳은 아주 무해한 행성이었다.”
-본문 중에서
『갈라파고스』 속 화자는 인류의 멸망 원인으로 ‘엄청나게 커다란 뇌’를 꼽는다. 조금씩 큰 뇌를 가지도록 진화한 인류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만들어 내고 결국 전쟁을 통한 자멸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보니것은 미스터리한 화자의 입을 빌려, 형편없이 크기만 한 인류의 뇌와 그 뇌가 말미암은 무수히 많은 인간들의 잘못을 끊임없이 비꼬고 풍자한다. 심지어 백만 년 후의 새로운 인류는 뇌의 크기가 점점 작아져 현 인류처럼 쓸데없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진화’하기에 이른다.
●커트 보니것이 바라보는, 애석하게도 이미 엉망이 되어 버린 모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
“내가 굳이 말해야 하겠니? 공중에서 봤을 때 한때는 아름답고 풍요로웠던 이 행성이 지금은 부검대에 노출된 불쌍한 로이 헵번의 병든 장기들과 비슷하단 것을?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인간들의 도시는 오직 성장만을 위해 성장하고 뭐든 닥치는 대로 다 먹어 치우며 망가뜨리고 있는 암세포들과 비슷하단 것을?"
-본문 중에서
커트 보니것이 비판하고자 했던 사회의 모습은 화자의 아버지가 화자에게 건넸던 위의 말들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채 백만 년에 걸쳐 인류의 진화를 목도하고 생존자들을 굽어보던 화자처럼 보니것도 결국 희망을 놓지 않는다. 생존자들은 절망 속에서도 차근차근 그들만의 사회를 건설하였고, 서로를 보듬고 위하면서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아 진화의 가능성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발전을 위하여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고, 자원을 얻기 위해 잔악무도하게 전쟁을 하며, 편리한 생활을 명목으로 과도한 낭비를 일삼는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구축한 고도의 문명도 결국에는 특정 집단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며, 지구 곳곳에서는 아직도 굶주림, 질병, 전쟁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많다. 커트 보니것은 일찍이 『갈라파고스』에서 풍자와 블랙 유머를 통하여 이러한 행태들을 경고하였고, 그 경고는 지금 여기에서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마냥 남의 일이라고만은 치부할 수 없는 보니것식 20세기 최후의 인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 그 진화의 여정에 함께해 보기를 바란다. 충격적인 신인류의 모습과 백만 년간의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미스터리한 화자의 정체에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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