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읽은, 눈을 떼고 싶지 않을 만큼 자잘한 일상이 주는 잔잔함과 곧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요소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는 『침묵에 갇힌 소년』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온다.
증손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캐티는, 유년 시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의사인 아빠를 둔 캐티는 의사를 꿈꾸는 평범한 소녀이다. 캐티는 아빠와 함께 동생을 임신 중인 엄마를 도울 가정도우미 페리를 데리러 가는 길에 페리의 동생 제이콥과 처음 만나게 된다. 떠나는 페리를 향해 수줍은 듯 손을 흔드는 제이콥, 캐티의 시선을 피해 얼른 창 뒤에 숨어버린 제이콥이 내내 머릿속에 남는다.
"저 아이가 내 가방을 들 거예요."
아빠가 그렇게 말하자, 그 남자가 제이콥에게 가방을 건넸다.
나는 어떤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정신지체아야."
그는 옆에 있는 남자를 팔꿈치로 치며 제이콥을 가리켰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좋은 뜻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이콥이 듣지 않았기를 바랐다. 39쪽
제이콥은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아는 소년이다. 말이 없고 표현이 서툴고, 항상 모자 속에 모습을 감추는 소년으로, 그 나이 소년 중에 입으로 소리 흉내내기를 가장 잘 한다고 캐티는 생각한다.
캐티의 집과 이웃집 비숍씨네 집 그리고 마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침묵에 갇힌 소년』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소재로 잔잔하게 전해진다. 작가 로이스 로리는, 사건들과 마주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최소한으로 표현하는 문체로, 당황스럽고 놀라운 그리고 흥분의 소리를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침묵에 갇힌 소년』은 단 한문장에서도 흥분의 소리를 내지 않으며, 사건의 원인과 결과까지도 속시원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독자가 느끼는 만큼이 진실이라는, 독자가 짐작하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말한다.
"아빠, 제이콥은 정신지체예요? 그게 뭐예요? 머리에 이상이 있다는 뜻인가요?
내가 묻자 아빠는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제이콥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정신지체란 말은 지능이 없다는 뜻이니까. 그래, 제이콥이 좀 다르기는 하지. 하지만 제이콥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다가가는 방법도, 그 옆에서 안전하게 있는 방법도 다 알아. 그러려면 지능이 필요하거든.그런 거야, 캐티. 저기 있구나."
돌아보니 커다란 돌이 돌아가며 곡식을 갈고 있는 것을 그늘에서 지켜보고 있는 제이콥이 보였다. 46쪽
캐티의 아빠는 마을에서 매우 유능한 의사이며, 환자에게 매우 긍정적인 반응으로 진료를 본다. 또한 의사를 꿈꾸는 캐티에게 현장을 직접 보여주고, 꿈을 꾸는 딸에게 적극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다. 캐티 또한 아빠의 영향과 긍정적인 시선으로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제이콥을 바라보며, 그가 가진 재능을 아주 귀하게 여기는 심성이 참 맑은 소녀이다.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미소 한 번 짓지 않는 제이콥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다가서는 캐티의 모습은 어른인 나에게도 약자이기에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제이콥은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표현하지 않는다. 누구와도 교감할 수 없으며,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제이콥은 누가 보아도 약자이고 침묵으로 일관하기에 떠넘기고 함부로 다루기에 제격인 인물이다. 그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어른들의 힘에 제이콥은 아무런 반항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이끌림을 당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놓인 문제들이 제이콥에게 그대로 일어나고 있음에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보다 약자의 세상을 인정하는 어른들의 자세가 시급하지 않을까 싶다.
『침묵에 갇힌 소년』은, 제이콥과 함께 한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캐티의 회고록과 같은 이야기이다. 가정도우미 페리의 동생 제이콥, 모두들 정신지체아라고 부르는 그를 '친구'로 기억하는 캐티, 그들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옆집 비숍씨의 아들 폴과 페리의 언니 넬, 그들이 서로 얽힌 관계 속에서 제이콥은 또 다른 낙인으로 세상과 싸워야 한다. 그 싸움은 아무런 기록도 없이 사라지고, 캐티는 할머니가 되어 증손자들과 함께 한다.
『침묵에 갇힌 소년』은 그 동안 읽었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소재와 분위기를 풍긴다. 캐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일상이 잔잔함과 즐거움이었다면, 도시로 가고자 하는 꿈을 꾸는 페리의 언니 넬에게서는 불안함과 아슬아슬함이 풍겨오고, 말없이 동물들과 교감하는 제이콥을 만날 땐 피식 웃음이 나다가도 안타까움에 답답함이 베어나온다.
『침묵에 갇힌 소년』은 캐티가 회상하는 제이콥과의 일상을 잔잔하게 담아내는 이야기로, 어른들의 이기심과 미안함으로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도 덮을 수 없게 한, 오랜만에 만난 '사색'이란 말이 떠오르게 한 책이다.
“당당하면서도 조용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체…… 절대적으로 감동적이며 영원히 기억될 이야기.” -<혼북 매거진>
“로이스 로리는 가족들이 어떻게 삶을 만들어 가는지를 잘 보여 준다. 절망을 불러올 수 있는 오해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며, 호기심 많고 인정 많은 매력적인 캐릭터 ‘캐티’를 창조했다.” -<북리스트>
누구에게나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그런 순간이…
-1,000만부 이상 판매된 『기억 전달자』의 작가 로이스 로리의 성장소설
우리는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순간’을 한 번쯤은 경험하게 된다. 그 결정적인 순간은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하는 사건일 수도 있고, 생각만 해도 여전히 아프고 후회되는 것일 수도 있다.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때로는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그 순간들은 언젠가 이야기가 된다. 소설 『침묵에 갇힌 소년』은 할머니가 된 ‘캐티’가 어린 시절 바로 그 결정적 순간을 경험케 한 소년 ‘제이콥’을 다시금 소환하는 작품이다.
그동안, 미국의 가장 위대한 풍자 작가 커트 보니것의 유일한 단편소설집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와 대표적인 SF소설 『갈라파고스』, 동명의 영화 원작 소설 『플립』과 『브로크백 마운틴』, 영 어덜트 소설의 바이블 『씁쓸한 초콜릿』 등 다양한 소설을 펴내 온 에프(f)에서 영화 <더 기버: 기억 전달자>의 원작 소설가로 널리 알려진 작가 로이스 로리의 성장소설 『침묵에 갇힌 소년』을 새롭게 출간하였다.
작가 로이스 로리는 어렸을 때 죽은 언니를 추억하며 쓴 첫 소설 『그 여름의 끝』으로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 다양한 주제로 40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고 소설 『기억 전달자』와 『별을 헤아리며』로 뉴베리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며 전 세대의 독자를 아우르는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디스토피아를 그린 『기억 전달자』는 평과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1,000만 부 이상의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영화화 되었다.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어, 잔잔한 흐름 끝에 충격적인
결말을 품고 있는 이야기
캐티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는 제이콥은 어떤 소년일까? 인생의 황혼녘에 도달한 뒤에 캐티는 왜 또다시 기억의 저편에서 어린 시절에 만난 그 소년을 새삼 소환하게 된 걸까? 제이콥은 말이 없는, 침묵에 갇힌 소년이다. 자폐 성향이 두드러지는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이콥이 모자라고 정상이 아니라며 손가락질하지만, 캐티의 아버지는 제이콥이 다른 사람들과 단지 ‘다를 뿐’이라고 설명하며 제이콥이 가진 재주들을 칭찬한다. 넓고 따뜻한 시각을 가진 아버지 덕분에 캐티 역시 제이콥을 마음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 말 없는 소년과의 특별한 우정을 조금씩 키워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콥은 어떤 비극적인 사건에 연루되고, 진실은 침묵 속에 영영 갇혀 버린 채, 그날 밤 이후 캐티는 제이콥을 다시는 보지 못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1911년, 작가의 먼 친척이 우연히 카메라에 담은 한 소년의 사진이었다. 이 소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작가는 소년의 표정을 보고 그가 큰 트라우마를 경험했거나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단 한 장의 사진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제이콥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하였고, 결국 가슴에 사무치는 스토리와 다소 충격적인 결말로까지 나아갔다.
이 소설은 시대적 배경인 20세기 초 미국 사회의 삶을 사실적으로 복원하는 데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농장과 제분소가 마을의 대들보 역할을 했던 그때, 자동차가 마을에 첫 선을 보이던 장면이나, 전화기가 처음으로 도입되어 사용되던 이야기 등을 통하여 당시의 역사적인 장면들을 생생하고 섬세하게 그려 냈다. 이러한 디테일들은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채우며 독자들의 몰입을 돕는다.
로이스 로리의 소설 『침묵에 갇힌 소년』을 펼쳐 캐티의 결정적 순간을 함께 경험하고 나면 독자들은 각자 ‘자신의 결정적인 순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때로는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그 순간들은 또 언젠가 누군가에게 풀어 놓을 ‘진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주요 내용
캐티는 호기심이 많고 똑똑하며 아빠처럼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여덟 살 소녀이다. 어느 날 캐티는 아빠를 따라 나섰다가 우연히 제이콥을 만나게 된다. 제이콥은 지적 장애를 가진 소년으로, 사람들과 말을 하지 않고 학교에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농장 일을 잘 돕고 동물들을 잘 보살피며 여러 가지 소리를 똑같이 흉내 낼 줄 안다. 캐티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이 조용한 소년과 조금씩 우정을 키워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콥은 어떤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절망을 불러오는 오해는 점차 커져만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