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눈에 보이는 이것들이 과연 전부일까
하고 생각해 본 적 있어?”
최면을 거는 듯한 어둡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동시대의 여러 작품들에 영향을 끼친 ‘원조’ 도시 판타지 『네버웨어』는 제목 그대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런던에서 가장 좋은 투자 분석 회사를 다니는 리처드 메이휴, 그에게는 퇴근 후 돌아갈 안락한 집과 사랑을 속삭일 아름다운 약혼녀가 있다. 도시의 삶에 완벽하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그의 앞에 어느 날 ‘도어’라는 이름의 피투성이 소녀가 나타나고, 다친 소녀를 도운 후부터 평온하던 그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런던 지상에 사는 그 누구도 리처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게 된 것. 전날까지 출근하던 회사에 자신의 책상이 사라지고, 약혼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 뒤에야 이 모든 일들의 원인에 도어가 있음을 깨달은 리처드는 지상에서의 평범한 삶을 되찾기 위해 세상 어디에도 ‘네버웨어’, 런던 지하 세계의 문을 열어젖힌다.
천사와 암살자, 괴수와 헌터, 지붕 사람과 쥐의 말을 하는 사람들까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존재들로 가득한 런던의 지하 세계가 뿌연 안개 너머로 그 환상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이전의 『네버웨어』를 읽어 본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이 형태의 『네버웨어』를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본문에 덧붙이는 「최종 판본에 대한 작가의 소개」에서 게이먼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1996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한 『네버웨어』를 2년 뒤인 1998년 미국에서 출간하게 되면서 게이먼은 원본을 다시 살피어 ‘손볼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손보아 더 좋은 방향으로’ 다듬은 수정본을 내놓았다. 마침내 이 책에 실린 『네버웨어』는 영국 원본과 미국 수정본이 결합된 것으로, 작가 스스로 ‘작가 선호 에디션’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큼 특별한 판본이 되었다. 더 나아가 ‘속편은 쓰지 않는다’라는 작가만의 금기를 어기고 2014년 덧붙인 스핀오프 「후작은 어떻게 코트를 되찾았을까」까지 함께 실려 있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네버웨어』라 할 만하다.
“내가 어린 시절 사랑한 『나니아 연대기』 또는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책들이
아이였던 나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것처럼, 어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책을 쓰고 싶었다.”
-닐 게이먼
흔히 ‘판타지’라는 장르를 떠올릴 때 우리는 머나먼 미래 또는 과거로의 시간여행,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초능력, 전혀 다른 차원으로의 공간 이동과 같이 현실과 단 한 군데도 접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설정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네버웨어』를 통해 펼쳐지는 도시 판타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누군가는 출퇴근을 하고, 누군가는 등하교를 하는 더없이 평범한 지하철역들이 단순히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승강장이 아니라면 어떨까. 내가 사는 도시, 매일 오가는 익숙한 거리, 무심코 지나치는 관광지 등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않았던 공간들을 한순간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뒤바꾸는 동력이야말로 여타 다른 판타지소설과 차별화된, 단연 『네버웨어』만이 갖는 힘이다.
흐트러짐 없이 흘러가는 평온함을 감사하게 여기다가도, 이따금씩 쳇바퀴처럼 느껴지는 우리의 일상에는 판타지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로 그 순간 삶에 재미와 활력을 불어넣고 탈출구 역할을 해 줄 멋진 도시 판타지, 바로 『네버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