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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간평가단] 『『듣고 있니?』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주세요.-candy718 2021-02-24 23:07:57

『 듣고 있니?
틸리 월든. 글
f. 에프 그래픽 컬렉션』

아이들은, 어른들을 위한 ‘배려’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처를 돌보기 전에,
자신에게 남겨진 상처가 어떻게 곪아가는지도 모른 채,
부모의 마음이 다칠까,
부모와 연결된 또 다른 관계가 깨어질까
혼자서 모든 상처를 끌어안는다.

올바름을 강조한 부모에게서 자란 자녀들은,
상처 정도는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상처를 드러낼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올바름이 때로는 잘못을 덮어주는
바람막이가 되어준다는 것,
그것이 우리 아이들이 더욱 아프게 하는지도 모른다.

‘비’는 무작정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차 계획이 없는 그녀는, 무작정 걷는다. 도로의 어수선함과 어두워지는 배경이 불안함을 가중시키고, 상점에서 우연히 만난 ‘루’와의 겉도는 대화를 통해 비의 불안정함을 느끼기엔 매우 충분하다.

‘루’는 비의 엄마차를 정비해 준 기억을 떠올리며, 갈 곳이 없어 보이는 비를 차에 태운다. 비가 말한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기로 하면서 ‘자동차’라는 한 공간에 함께 하게 된다. 서로 묻고 대답하는 대화 속에서 그들은 마치 다른 대화를 하는 듯 튕겨져 나올 뿐, 서로에 대한 그 어떠한 교감도 나누지 않는다.

‘루’는 엄마가 남긴 차를 몰고 기억에 남아 있는 고모할머니댁을 찾아가는 길이다. 우연하게 만난 ‘비’와 동행하면서 뜻하지 않은 일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자신이 가슴에 안고 있던 감정이 “상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원인이 엄마의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게 된다. 자신이 내내 감추고 있었던 ‘성소수자’임을 말하고 싶어진 순간, 그녀의 곁에 더이상 엄마가 없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한다. 루가 느끼는 상실감은 무기력함으로 확산되고, 자신이 애정을 담아 하는 정비사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삶을 위한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상황에 이른다.

‘비’는 처음으로 상처를 드러낸다. 나이가 같은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집을 나온다. 자신만 떠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안고, 자신이 잘못했기에 일어난 일로 자책하며, 상처는 더욱 깊게 곪아간다. 친척이 저지른 것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단정짓는 비는, 여전히 외롭고 여전히 아프다. 그녀의 아픔을 아무도 알지 못한 지금, 비는 처음으로 루에게 털어놓으며, 그 동안 꽁꽁 안았던 상처와 직면한다.

‘루’는 비의 상처를 꼭 안아준다. 절대 비의 잘못이 아니라고, 너는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를 온 힘을 다해 안아준다. 루는 비의 눈물과 상처를 안아주며, 자신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상실감에 온기를 채우는 기회가 되어준다. 혼자 남겨진, 자신의 삶이 갑자기 의미없게 여긴 루에게 비의 힘겨움은 루에게 다시 일어나야 하는 디딤돌이 되어 준다. 비를 안아주듯 루 스스로 자신의 상실감을 안아줄 수 있는 용기를 자아낸다.

‘비’ ‘루’의 무작정 여행길에 동행하게 된 길잃은 고양이 다이아몬드, 비는 길을 잃고 헤매는 다이아몬드에게서 무작정 집을 나와 헤매는 자신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집 찾아주기에 열을 올린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길, 길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길, 고양이를 찾기 위해 그녀들의 뒤를 쫓는 두 남자와의 만남, 무계획으로 떠난 여행길은 모험이 되고, 그들이 찾고자 하는 고양이에게 신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 ‘루’가 가는 길에 생겨나는, 이상하리만치 이상한 일들이 고양이의 신비한 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비’ ‘루’의 어색하고도 다른 세계에서의 대화가 이어지는 초반과는 다르게 조금씩 서로의 상처를 짐작하게 되고,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상처를 드러내는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그들의 대화가 겉돌기만 했던 원인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비’ ‘루’는 듣고 싶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나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아낀다고 말하는 부모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들을 기회를 상실한 ‘루’와 들을 기회를 갖는 것이 힘겨운 ‘비’가 떠나는 낯설고 험난한 여행길을 함께 하면서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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