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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린이 사는 골목 - mongline 2021-02-23 18:10:07


기린이 사는 골목

김현화 지음

푸른책들

내가 사는 동네의 골목에 기린이 살고 있다고 말한다면 주위에서는 어떻게 반응을 할까?

말도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면박을 받을 것 같다. 그렇다, 동물원이나 사파리가 아니고서야, 혹은 내가 야생에서 살고있지 않고서야 기린과 이웃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배화동 배화로 360번길 골목에 살고 있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기린은 선웅이의 상상속 동물이다. 동화작가를 꿈꾸는 선웅이의 열두 살의 봄, 그때부터 이곳에 기린이 살기 시작 했다.

“누나는 함부로 세상에서 지워 버려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고.” … “나는 동화 쓰는 사람이 될 거야. 내 말이 잘 익어서 뭔가를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 때마다 동화를 쓸거야. … 빛이 나는 사람이니까, 누나는. 내 동화를 듣는 사람들도 그 환한 빛을 볼 거야. 누나는 그런 사람이야. 나, 현선웅한테.” _p.15_

책의 곳곳에는 선웅이의 동화가 많이 나온다. 대부분이 은형이를 위해서 은형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눈물까지 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분홍 달팽이”이야기가 나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아있다.

“분홍 달팽이 앞에 마주 선 달팽이가 말했어. 이제 네 형혼이 가벼워 졌니? 여긴 꿈꾸는 달팽이만 볼 수 있는 세상이란다. 너처럼 자신을 위해 꿈꾸는 달팽이만 볼 수 있는 세상이야. 네가 슬픔에 둘려싸여 있던 기억을 벗어 낼수록 저 달도 비늘을 벗는단다. 왜냐하면 저 달은 이 세상으로 오는 달팽이를 위한 달이거든.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향기가 나. 네 발등을 덮은 달 비늘도 그래서 향기가 나는 거야.” _p.90_

“은형이 누나, 누나도 들판 너머 세상에 가고 싶은 거지? 그래서 지금 이렇게 꿈을 꾸고 있는거지? 내가 바라는 건… 누나가 분홍 달팽이처럼 들판 너머 세상으로 갈 때 나도 함께 가는 거야. 아니, 분홍 달팽이를 기다리고 있던 그 달팽이처럼 이미 나도 거기 서서 누나를 기다리는 거야. 은형이 누나, 그 달팽이가 그랬잖아.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향기가 난다고. 난 누나가 그 말을 믿어 줬으면 좋겠어.” _p.91_

초고도 비만이어서 걷는 움직임조차도 힘든 선웅이는 자칭 은따이다. 진따나 아줌마는 선웅이의 집안 살림을 도와주는 배트남인 가사도우미이다. 그리고 은형이는 진따나 아줌마의 딸이고 선웅이의 동화속 주인공이다. 은형이가 한 살 많지만 술주정뱅이 아빠때문에 학교를 늦게 들어가게 되어 선웅이와 같은 학년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튀기라고 놀림을 받으며 괴롭힘을 자주 당한다.

“오늘같이 해 좋은 날엔 걷기 좋을 텐데. 왜 친구들이랑 함께 가지 않고?”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말든가. 뭐 차라리 그렇게 물어 주었더라면 오히려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까. “걸어 다니기 창피해서요. 그리고 저 은따예요.” _p.32_

선웅이나 은형이가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영웅처럼 나타나서 말 한 마디로 상황을 종료시켜 주는 역할은 기수가 하고 있다. 기수는 할아버지와 둘이서 살고 있고 다른 아이들을 신경쓰지 않고 혼자서 다닌다. 이 셋은 각자 결핍을 가지고 있고, 셋이서도 융화가 되지 못한 채 서로의 주변을 서로가 인식하지 못한 채로 배외한다. 비슷한 아이들끼리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해서 끌리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 아이들은 각자의 삶속에서 열심히 성장을 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이들을 자꾸 아프게만 한다.

이 책은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배화동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권오복 할머니, 17년 동안이나 매일같이 파지를 주워서 노숙자들의 저녁을 챙기는 기수 할아버지인 꽃밥집 이복규 할아버지, 초상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화가 황인백 아저씨, 양푼 순대국밥집 아주머니… 모두가 한 동네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모면서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배우면서 커가고 있다.

이 세 아이에게 시련이 닥친다. 이 아이들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는 시련이다. 어른들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세상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참을 가슴 아파하며 울었다.

선웅이와 은형이와 기수는 이렇게 자신들의 열 다섯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가슴 아파하며 우는 것 보다도 더 많이 아파하면서, 왜 아파해야하는지 그 이유조차 잘 알지 못하고, 막상 안다고 해도 어떻게 풀어야만 괜찮아지는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그들의 열 다섯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 각자 삶을 살아갔을 때는 알지 못 했던 그런 소속감을 이제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연대를 느끼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파이팅을 한다. 그 아픔을 서로에게 의지하고 미래를 희망하면서 그렇게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생겼다.

열 다섯 살은 중학교 2학년생의 나이이다. 어린이의 세계에서 막 벗어나서 새로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어른인 내가 마냥 어리게만 보았던 이 시기의 학생들의 진지한 마음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이 또래의 학생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들의 고민과 친구들의 고민을 보다 더 잘 이해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재미있게 읽은 후 작성한 지극히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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