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과 바다와 석호와 하늘과 바람과 햇빛 속을 쏘다니던
시인의 첫 동시집 『강아지의 변신』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마음속 깊이 자리한다. 첫 동시집을 출간한 박금숙 시인 역시 바다나 산, 호수나 들판을 신나게 뛰어다니던 어릴 적 기억을 꺼내 동시에 차곡차곡 담았다. 강원도 고성의 동해 바닷가 출신인 박 시인은 푸른 바다에 뛰어들어 멱을 감던 일, 설악산 울산바위 너머로 지는 저녁 해를 보던 일 등을 다채로운 시상으로 자연스레 연결한다. 사물들에게 자기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 주고, 다정히 말을 걸며 친구로 삼던 시인은 끝내 스러지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추억들을 제재로 삼아 시의 독자인 아이들에게 명랑한 목소리를 건네고 있다.
2013년 『아동문학평론』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박금숙 시인은 9년 만에 마침내 만반의 준비를 끝낸 43편의 동시들을 한데 모아 첫 동시집 『강아지의 변신』을 펴냈다. 4부로 구성된 이 동시집에는 아주 다채로운 동시들이 실려 있다. 산과 들과 바다와 석호와 하늘과 바람과 햇빛 속을 쏘다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겼지만, 과거의 체험들만이 동시의 제재가 된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오관에 꿰이는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 맑고 또렷한 시선이 있다.
박금숙 동시집 『강아지의 변신』에는 일상과 삶이 잘 녹아 있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아기자기한 일상, 사소한 일들로 애증의 감정이 교차하면서도 결국 넉넉한 사랑으로 감싸 안는 가족, 때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숱한 세상사들까지,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맑고 풍요로운 동시들로 가득하다.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만드는 힘, 그리고
평범한 것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
가을 단풍이
가을 단풍 닮은 저녁놀이
저녁놀 좋아하는 울 언니 얼굴이
붉다, 붉어!
아기 볼이
아기 볼 닮은 짝꿍 수아 볼이
수아 좋아하는 내 볼이
붉다, 붉어!
-「붉은 것들」 전문
박금숙 시인은 오감을 한껏 열어 주위의 사물들과 깊은 교감을 나눈다. 어릴 적 바다와 산을 누비며 체험한 청정 자연, 지금 여기에서 막 일어나는 생생한 일들, 보고 듣고 느끼는 그때그때의 감성들은 자연스레 시어가 되고, 또 우리 삶과 하나하나 연결되며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분홍빛으로 곱게 물든 벚꽃나무는 ‘하/하/하르/하르르/하르르르’ 하고 웃음보를 터트리며, 과수원에서 ‘울 할매, 할배가/꼬부랑꼬부랑/사다리 타고 올라가/싸매 놓은 봉투 책’과 함께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은 ‘쉬지도 못하’고, ‘소설책을 읽는다,/신문을 읽는’다. 평범한 사물들이 생명력을 얻고 동시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되는 것이다.
내년에도 다시 볼 수 있을까?
마당 가득 환한
목련꽃.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신다.
내년 말고 십 년 뒤에도
볼 수 있어요
할머니!
마당 가득 환한
목련꽃.
-「목련꽃 피는 날」 전문
여기엔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할머니와 속 깊은 손주의 따뜻한 일상도 함께 있다. 또한 박금숙 시인은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유머와 위트로 금세 밝고 재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고된 택배 일을 하는 아빠는 ‘택배 기사로 변장을 한’ 산타클로스가 되고, 사람들에게 함부로 버려진 검정 비닐봉지는 ‘내 그럴 줄 알고/이렇게 튄 거야’라며 ‘하늘 높이 훨훨 날아서/바다 건너 저 멀리까지도 가 볼 거’라고 맘껏 반항을 하게 내버려 둔다. 우리 일상과 주위의 평범한 사물들이 특별하게 변화하는 순간이다.
이처럼 박금숙 동시집 『강아지의 변신』에는 맑은 시선과 명랑한 목소리로 빚어 낸 동시들로 가득하다.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평범한 것들을 아름답게 변모시키는 동시들을 마음에 담으며, 이 놀라운 순간들을 함께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