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작가의 넉넉한 품 속에 깃든 아이, 송이
최근 젊은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친구처럼 통통 튀며 곁에서 함께 호흡하는 젊은 작가들 덕분에 아이들은 좀더 다양한 동화와 다양한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아이들과 좀 거리가 먼 듯한 노(老)작가들은 어떻게 아이들에게 다가갈까? 한 뱃속에서 몇 초차이로 태어난 쌍둥이조차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데, 아이들과 할머니 사이의 세대 차이는 또 얼마나 클까? 그 해결 방안을 찾고 싶다면 『송이』를 만나 보자.
『송이』를 탄생시킨 강정님 작가는 63세라는 늦은 나이에 첫 동화책 『이삐 언니』(푸른책들, 2000)를 펴내었으며, 이제 칠순에 접어든 ‘할머니 작가’이다. ‘송이’는 이 할머니 작가가 쓴 두 번째 작품 속에서 살고 있다. 외딴 골짜기 마을에서 놀아 주는 친구 한 명 없이 지내는 송이. 하지만 할머니 작가는 그런 송이의 외로움을 오히려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이것은 풍부한 인생 경험을 통해 저절로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고, 사랑을 넘치도록 부어 줄 수 있는 ‘할머니’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척박한 바위 위에 뿌리 내리고 꼿꼿이 서서 노래 부르는 애기바늘꽃처럼 송이가 자연과 동화되며 건강한 생명력을 지닌 아이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작가들처럼 통통 튀지는 않지만, 아이의 외로움이나 절망, 희망 등을 아이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노(老)작가의 혜안과 넉넉한 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요 내용
송이는 산골짜기 해님목장에서 아빠 엄마와 함께 산다. 아빠 엄마는 젖소를 키우느라 바쁘고, 찾아오는 손님이라곤 며칠에 한 번씩 들르는 우체부 아저씨가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송이는 편지를 한 통 받는다. 송이네 주소가 적혀 있는 연을 주웠다는 ‘한빛나’는 12월에 찾아오겠다고 한다. 한빛나가 온다는 날 아침, 눈이 펑펑 쏟아지고 송이는 눈사람을 만들며 한빛나를 기다린다. 그런데 한빛나는 송이가 만든 눈사람인 것이다. 송이는 긴 겨울 동안 빛나가 들려 주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으며 신나는 시간을 보낸다. 또 아기 바람 펄렁이, 해마다 찾아오시는 외할머니, 거꾸로 태어난 송아지 못난이, 선물을 배달하러 왔다가 못난이가 태어나는 걸 도와 준 용주 언니 등 송이의 친구는 셀 수 없이 많다. 늘 밝고 즐거운 송이에게도 생각지도 못했던 슬픔이 닥쳐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친구 못난이가 트럭에 실려 목장을 떠나고, 아빠 엄마는 우유가 팔리지 않아 걱정이다. 하지만 송이는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 무럭무럭 자란다. 의젓하게 빈 집을 지킬 줄도 알고 다리 다친 엄마를 대신해 밥을 짓기도 한다. 외롭지만 밝은 송이는 끝까지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들
2명 중 한 명이 제왕절개로 태어나 10명 중 9명이 우유를 먹고 자라고, 커서는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다는 우리 아이들은 자연과 접할 기회를 갖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 텔레비전을 하루만 못 봐도 심심해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송이는 요즘 아이들과 다르다. 소외 지역에 사는 송이는 돌 봐 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자연과 더불어 외로움을 달래며 자연 속에서 스스로 성장한다. 동심은 어떤 환경에서라도 빛을 발할 수 있지만, 자연과 가까운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의 정서는 유연해지고 상상력은 한층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장편동화 『송이』에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아이들의 놀라운 힘이 잘 드러나 있다. 아이들에게는 풍부한 상상력과 통통 튀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소한 슬픔과 외로움을 차분히 들여다보면서 아픔을 극복하는 힘이 아이들 내부에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송이』를 읽는 독자들은 많은 친구를 사귀고 작은 사물에도 마음을 쓸 줄 아는 송이를 통해 자신의 마음 속 깊숙이 자리잡은 희망과 용기를 불러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