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역사, 제암리를 아십니까? -일본인 소년의 눈으로 본 우리의 역사
‘3·1 독립 만세 운동’ 하면 가장 먼저 누가 떠오를까? 아마 열에 아홉은 유관순 열사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유관순 열사가 3·1 독립 만세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유관순 열사 혼자 3·1 독립 만세 운동을 이루어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의 우렁찬 독립 만세 못지않게 이름 없는 풀뿌리 백성들이 함께 외친 만세 소리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유관순 열사의 우렁찬 독립 만세 소리에 묻혀 이름 없는 백성들의 만세 소리는 잊혀졌다. 해마다 3·1절이 되면 유관순 열사의 영웅적인 행동만이 끊임없이 조명을 받고 보도될 뿐, 그 보다 더 중요한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처절한 외침은 외면 받아 왔다. 그 대표적인 현장이 바로 제암리이다.
3·1 운동 당시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 수촌리, 발안리, 고주리, 석포리, 주곡리 등지에서도 독립 만세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그러자 일제는 제암리 교회에 마을 주민 약 30여 명을 감금해 집중사격을 하고 증거인멸을 위해 교회와 마을에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이 ‘제암리 학살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유관순 열사가 독립 만세를 외친 아오내 장터보다 더 처절한 역사적 현장이었던 제암리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 동안 우리에게 잊혀졌던 제암리가 동화로 되살아났다. 『제암리를 아십니까』(푸른책들, 2007)는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저지른 만행 ‘제암리 학살사건’을 제재로 한 장편 역사동화이다. 장경선 작가는 일본인 소년 나카무라의 눈으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들려 주고 있다.
주요 내용
1919년 3월 1일, 전국 곳곳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발안에서 멀지 않은 제암리, 수촌리 등지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난다. 나카무라는 나라를 맡아 달라고 떠넘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나라를 되찾겠다며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하는 조선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다 나카무라는 아버지가 ‘독립군’을 잡아 잔인하게 고문하고 죽이는 것을 알게 된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조선인들의 시위가 더욱 격렬해지자, 나카무라의 아버지 사사까와 조선인 앞잡이 쌍칼, 끄나풀 김만복 등은 제암리를 쓸어 버리기 위해 모의를 한다. 그것을 우연히 듣게 된 나카무라는 닭싸움터에서 만난 조선인 여자 아이, 자신의 마음 속에 담아 둔 아이 연화에게 알리기 위해 제암리를 찾아간다. 조선인들이 비참하게 사는 이유가 자기네 나라와 자신의 아버지 때문임을 알게 된 나카무라는 연화에게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것을 밝히지 못하고 벙어리 흉내를 낸다.
그러다 1919년 4월 5일 발안 장터에서 대규모 ‘만세 운동’이 일어나고, 연화 할아버지 등 많은 조선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일본인들도 피해를 입는다. 그러자 사사까 등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제암리 교회에 사람들을 가두고 집중사격을 해 모두 죽인다. 그리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교회와 마을에 불을 지른다.
그제야 연화는 나카무라가 사사까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카무라는 연화에게 용서를 빌지만 일제의 만행으로 할아버지와 엄마, 아버지를 잃은 연화는 나카무라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러자 나카무라는 자신이 어른이 되면 일제가 저지른 죄를 세상에 알릴 것을 연화에게 다짐한다.
가슴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다!
독립 만세를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교회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 다음 학살한 일제의 만행, 제암리 학살사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쓰인 장경선 작가의 장편 역사동화 『제암리를 아십니까』(푸른책들, 2007)에는 우리의 비참했던 일제 강점기의 역사가 조금의 가감도 없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당시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처참한 현실 때문에 너무 가슴이 아파 불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슴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고, 잔인하게 피해를 입은 처참했던 현실도 우리의 역사이다. 너무 잔인하다고, 너무 가슴 아프다고 언제까지 덮어둘 수는 없다.
최근 역사를 왜곡한 일본인 작가의 소설 『요코 이야기』라는 책이 미국에서 학교 교재로 쓰여 파문이 일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것으로 나오는’ 그 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해 문제를 제기하고, 수업을 거부한 채 1인 시위를 해 학교 측으로부터 그 책을 교재에서 빼겠다는 결론을 이끌어낸 것은 중학교 1학년생인 허보은 양이었다. 이와 같은 허 양의 용기 있는 실천에는 우리 나라에 와서 박물관을 돌아보며 우리 역사를 보고 듣는 체험이 밑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돌아오는 3·1절 우리 아이들에게 산 역사를 들려 주고 싶다면 제암리로 역사 체험을 떠나는 건 어떨까?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www.jeam.go.kr)’에서 잔인하고 처참한 현장이었지만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바로알고, 발안 장터에도 들러 해마다 열리는 독립 만세를 함께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지식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를 느끼게 해 주는 건 어떨까? 물론 이 책 『제암리를 아십니까』를 먼저 읽고 역사 체험을 떠난다면 더욱 뜻 깊은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