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디쓴 약에 달디단 막을 감싸 놓은 그림책
누가 뭐래도 어린이책에 담긴 지식과 교훈은 ‘쓴 약’임에 틀림없다. 단 한 번이라도 쓴 약을 맛본 아이라면 어른들이 아무리 감언이설을 늘어놓아도 어느새 쓴 약이 입에 다가오는 걸 눈치채고 설레설레 도리질을 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좀더 어린 나이의 아이들일수록 ‘재미’라는 달디단 막을 겉에 입힌 당의정(糖衣錠) 같은 그림책이 필요하다.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 수상 작가 팻 허친즈의 『자꾸자꾸 초인종이 울리네』는 ‘재미있게 놀면서 깨닫는 지식이 진정한 지식과 교훈’이라는 이치에 있어서 아주 적합한 그림책이다. 학습을 위한 그림책 특유의 ‘쓴 냄새와 쓴 맛’이 나지 않는다. 자꾸자꾸 아이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열두 개뿐인 과자를 자꾸자꾸 나눠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단순한 반복 구조와 그림은 재미를 원하는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맛있는 먹을거리를 두고 자기 몫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아무런 불평 없이 받아들이는 아이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사이좋게 나눠 먹어야 한다고 배우지만 늘 하나라도 더 먹고 싶어하는 게 아이들의 보편적인 심리이다. 이 두 가지 심리가 미묘하게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이 그림책은 가슴 졸이는 재미를 통해 ‘나눗셈의 원리’과 ‘나눔의 기쁨’이라는 약효를 발휘한다. ‘나눗셈’이 수학의 지식 중 하나라면 ‘나눔’이란 삶을 이끌어 가는 가장 중요한 지혜 중 하나인 셈이니, 아이들은 이 책을 보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유용한 지식’과 ‘진정한 삶의 지혜’를 동시에 얻게 될 것이다.
겨울방학 기간인 요즘, 언론에서는 학기 중보다 더욱 바빠진 아이들의 생활이 종종 보도되곤 한다. 방학을 맞아 적어도 한두 곳, 많게는 하루에도 대여섯 곳의 학원을 다니느라 종종걸음을 쳐야 하는 아이들이 과연 보고 듣는 만큼 모두 소화해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을까. 인생살이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은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는 말도 있듯이 놀면서 하는 학습, 즐기면서 깨닫는 지식과 지혜야말로 진정한 것이 아니겠는가.
주요 내용
엄마가 만들어 주신 과자 열두 개가 있다. 샘과 빅토리아 남매는 둘이서 여섯 개 씩 나누면 된다. 과자를 먹으려고 할 때, 마침 옆집에 사는 톰과 한나가 놀러 온다. 이제 세 개씩 나눠 먹으면 된다. 그 뒤에도 과자를 먹으려고 할 때마다 자꾸자꾸 초인종이 울린다. 그리고 자꾸자꾸 친구들이 놀러 온다. 두 명에서 네 명으로, 네 명에서 여섯 명으로, 결국 열두 명까지 늘어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샘과 빅토리아는 열두 개뿐인 과자를 자꾸자꾸 다시 나누게 된다. 결국 열두 명의 아이들이 모이고 겨우 과자를 한 개씩 나누게 되었는데, 다시 초인종이 울린다. 도대체 누가 또 온 것일까?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 수상 작가
작가 팻 허친즈는 19세기에 영국 그림책을 개척한 화가 케이트 그린어웨이를 기념하기 위해 영국 도서관협회가 창설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 수상작가이다. 해마다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그린 화가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한 작가라면 뭔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림책의 묘미는 무엇보다 책 속의 일러스트에서 쉽게 지나치기 쉬운 작은 요소들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자꾸자꾸 초인종이 울리네』 역시 그 묘미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반복 구조인 까닭에 장소는 한 곳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주전자와 냄비에서는 수증기가 점점 많이 새어 나온다. 주전자와 냄비는 단순한 소품이 아닌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많아짐에 따라 바닥에 찍히는 아이들의 발자국도 점점 늘어난다. 아이들이 가지고 온 장난감이나 옷가지들이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재미도 찾아 볼 수 있다. 『자꾸자꾸 초인종이 울리네』는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단순한 반복 구조의 그림책이 지니기 쉬운 지루함과 식상함에서 유쾌하고 통쾌하게 탈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