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
아무런 특징도 없이 넙데데하게 생긴 너브대 마을. 그 안에는 공터가 있고 공터 안에는 언제부턴가 ‘자살 나무’라는 별명을 가진 느티나무가 있다. 100여 년 전 일제의 단발령에 반발해 목을 맨 최초의 사람으로부터 왕따에 시달리다 목을 맨 중학생까지, 그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람 잡아먹는 귀신이 붙었다며 느티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본다. 그런데 어느 날 느티에 갓등 하나를 매달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나무가 가로등 역할을 하게 되었다. 가로등이 된 느티는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모두를 고요히 바라보고, 그 곁을 노숙자 ‘가로등지기’가 지키고 있다. 공터 앞에는 자수성가한 공팔봉 씨 집이 있고, 그 집에 세 들어 사는 순호네는 노름꾼인 아빠와, 억척스런 욕쟁이 엄마, 그리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순심 누나, 그리고 순호가 산다. 순호는 너브대의 모든 것을 지긋지긋해하며 늘 공상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순호 아빠는 노름판에 전셋돈 모두를 날리고, 순호네는 길에 나앉게 생겼다. 새벽마다 신문배달을 하는 등 열심이었던 순호는 이런 아빠에게 실망을 하고, 가로등에 돌을 던져 공터를 칠흑 같은 어둠에 빠지게 한 뒤, 마침내 가출을 결심하는데…….
지금 여기의 ‘가장 낮은 곳’을 이야기하는 성장소설
성장소설 『느티는 아프다』는 작가 이용포의 첫 책이다. 그는 일찍이 20대 중반의 나이에 시단에 데뷔하였고, 한때 소설과 드라마에 집중하였으며,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작품 쓰기에 집중하기 시작한 작가이다. 특히, 청소년을 위한 국내 작가의 성장소설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출간된 그의 첫 책이 ‘지금 여기’의 ‘가장 낮은 곳’을 이야기하는 성장소설이라는 점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느티는 아프다』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나하나의 등장인물들이 역동적으로 묘사되면서도 순호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작품에 매달리면서 개작을 반복한 작가의 노력과 탄탄한 구성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유기적인 흐름과 사이사이 여러 인물에게 클로즈업되는 섬세한 시선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단조로워지기 십상인 달동네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러온다. 또한 호남과 영남의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면서 여러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재현하였다. 질박한 사투리는 작가의 섬세한 문체와 어울려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작가의 시선 또한 특별하다. 화려한 아파트 단지에서 쏘아 대는 강렬하지만 차가운 빛보다는 작은 모닥불에 더욱 만족하는 가로등지기처럼 작가도 작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에 애정을 갖고 접근한다. 또한 주인공뿐 아니라 여러 등장인물들에 균등한 시선을 보내며, 통념상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인물도 따뜻하게 끌어안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 태도는 모든 사물과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특히 중심에서 비껴선 소외된 사람들, 때론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에 쏟는 작가의 애정을 보여 준다. 이러한 애정은 섬세한 묘사와 시적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작가는 따뜻하고 넉넉한 시선으로 만물을 바라보며, 반지하에 비쳐든 작은 아침 햇살 하나에도 감정을 실어 나른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모두가 나름대로의 존재 가치를 지닌다. 『느티는 아프다』라는 첫 작품을 통해 따뜻한 시선과 화려한 입담을 선보인 작가의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