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시문학의 선구자,
박목월이 생전에 펴냈던 동시집 『산새알 물새알』 새로이 출간!
우리 문학 ‘초판본’의 인기가 여전하다. 근 1세기 전의 감수성을 그대로 복원한 표지 디자인에, 그 시대의 표기법과 언어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어 고풍적 취향과 알 수 없는 향수를 자극한다. 예스러움이 이제는 멋스러움이 되고 희귀한 골동품적 가치까지 더해져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세련된 디자인과 화려한 영상미에 익숙해진 이 시대에, 단순하면서도 순박한 ‘옛 것’에 대한 이런 갈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겉으로 비치는 화려함이 채워 주지 못하는, 텅 비고 가난해진 현대인의 마음에 일어난 갈증의 표현은 아닐까? 감각의 과잉으로 지치고 피로해진 마음에 신선한 휴식이자 감동으로 고여 들 또 하나의 작품이 이번에 새로운 옷을 입고 복간되었다. 바로 한국시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박목월 시인의 동시집 『산새알 물새알』이다.
한국인은 박목월 시인 하면 「나그네」를 자연스럽게 연상한다. 수십 년이 넘도록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며 전 국민이 애송하는 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그네」보다 먼저 접하게 되는 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초,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실린 동시 「물새알 산새알」이다. 그러니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에 지금도 실려 있는 동시 「물새알 산새알」이야말로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로부터 손주 세대까지 우리 국민의 가슴에 처음 아로새겨지는 시인 것이다.
세련된 언어감각과 심미적 이미지는 동시라고 해서 뒤처지지 않는다. 물새알은 파도가 부서질 때의 하얀 이미지로, 산새알은 ‘알랄달락 얼룩진’처럼 의태어를 사용하여 더욱 감각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박목월 시인의 뛰어난 동심적 상상력과 독특한 발상은 세련된 언어감각과 심미적 이미지와 결합하여 ‘예술적인 동시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동시의 선구자였던 그가 생전에 펴냈던 동시집 『산새알 물새알』은 1961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는데, 어언 반세기 가량 잠들어 있던 이 동시집을 [푸른책들]에서 복간하게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산새알 물새알』은 박목월 시인이 생전에 펴냈던 동시집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구성, 시인 특유의 감성을 느끼게 해 주는 옛말이나 사투리 등을 그대로 살려내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리듬감이 가진 본연의 내음을 느끼게 할 것이다. 또한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 『풀아 풀아 애기똥풀아』, 『고구마는 맛있어』 등 많은 동화책과 그림책에 탁월한 이미지로 향토적인 서정의 세계를 구현한 바 있는 양상용 화가의 일러스트를 곁들여 현재의 어린 독자들이 더욱 친근하게 박목월의 동시를 만날 수 있게 하였다.
어린이다운 마음과 느낌,
그 동심을 넉넉하게 기르는 참 행복한 세계
박목월 시인이 한국 동시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유는 동시를 ‘아동이 읽는 문학’이 아니라 ‘동심의 문학’이라는 관점으로 전환시킨 데 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견될 만한 박목월 시인의 이러한 견해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나 느낌이 어른들에게도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며, 이러한 박목월의 동시론으로 인해 비로소 ‘동시도 시’가 되었다.
어른들은 모든 것을 효용적 가치에 두고 ‘이용’하려고만 한다. 그래서 ‘대문은 도둑을 막는 편리한 물건이고, 비는 마실 수 있는 물이 되고, 딸기는 맛있는 열매’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 그 어른들은, 또 어린이들은 ‘대문은 열 때마다 삐걱하고 소리로 인사하는 무엇이며, 빗방울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 딸기는 딸기밭에 사는 무엇’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박목월 시인은 ‘어린 시절은 참 행복했다. 또한 어린이들은 참 행복하다’고 선언한다.
어린이다운 마음과 느낌은 방울방울 내리는 비에서 ‘해롱대며 시시덕거리며 얼려 다니는’(「장난꾸러기」) 장난꾸러기를 느낄 수 있고, ‘딸기밭을 뒤지는’ 바람의 손길과 ‘잎새 뒤에 숨어서 갸름한 얼굴을 쏙 내미’(「밤바람」)는 딸기의 표정을 읽을 수 있으며, 하늘은 ‘새파랗게 은은한 비단 양산’이 되어 ‘하루 종일 뱅글뱅글 양산을 돌리며 그림자와 함께 뛰며’(「아기의 양산」) 노는 친구가 된다.
이처럼 박목월이 지향하는 동심에는 그것이 무엇이든, 상대가 누구든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참으로 넉넉한 행복의 세계가 있다.
참새 한 마리가 기웃거릴 때의 그 잠깐에도 동심은 ‘얘기가 하고 싶은 얼굴’을 놓치지 않는다. 이렇게 세상에 어린 사랑을 풀어놓는 박목월의 동시는 어린이와 어린 날이 있었던 어른 모두에게 다정한 어투로 참 세계, 우리의 삶에 있어야 할 세계를 일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