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조선의 이미지가 뒤집힌다!
우리가 몰랐던 조선을 낯설고도 새롭게 보는 방법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은 어떤 모습인가? 동방예의지국, 고요한 아침의 나라, 백의민족……. 이 평가들의 결백한 이미지는 아름답긴 하지만 추상적이다. 실제적인 삶, 역동적인 삶의 느낌보다 어떤 딱딱한 틀과 고정관념에 박힌 듯 정체된 이미지를 강하게 풍긴다. 강국들 틈에서 수많은 침략과 전쟁에 시달렸고, 그로 인한 가난과 착취에 고통받던 양민들은 엄격한 신분 차별 아래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는 격동하는 세계사 속에서 끝내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는 사실 말고도 고구려, 신라, 고려 등 고대 역사에 비해 조선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인이기도 하다. ‘선비의 나라’라는 이미지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350여 년 전, 낯선 나라에 표착해 이 땅에서 13년을 억류되어 살았던 헨드릭 하멜의 조선에 대한 기록물 『하멜 표류기』는 이 간극을 메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의 기록은 보통 사람들의 삶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급과 다채로운 분야까지, 단순하지만 직접적이고도 사실적으로 우리들의 눈앞에 살아있는 조선을 그려내 보인다. 역사가 외면하고 기록하지 않은 우리 아버지들의 아버지들의 삶이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표류된 서양인의 눈으로 생생하게 복원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땅에 표착해 포로와도 같은 신세가 된 하멜과 그 일행은 자유도, 경제적 활동도 차단되었다. 그런데도 왕은 쌀 외에는 어떤 것도 주지 않았고, 그들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구해야만 했다. 하멜은 그런 상황을 이렇게 기록한다.
“이곳에서는 구걸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너무나 곤궁했던 우리는 결국 구걸에 나서게 되었다. 우리는 그 일을 받아들이고 견뎠다. 구걸과 남은 식량 그리고 다른 필수품으로 우리는 추위에 대비할 수 있었다.”
구걸이 부끄럽지 않은 나라였던 조선에 가난이란 일상화된 현상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가난 속에서도 조선 사람들은 하멜과 동료들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잘라 나눌 줄 아는 따뜻한 심성을 가졌던 것 같다. 이런 짧은 구절에서 우리는 외적으로 남루하지만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정 많은 조선 사람들을 익숙하지만 왠지 낯설고 새롭게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