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버지니아 울프’의 강연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 『자기만의 방』 출간
전 세계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권위 있는 문학상이나 베스트셀러의 주인공이 여성 작가인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을 염원했을 수많은 이들 중 한 명은 바로 ‘82년생’ 버지니아 울프(1882~1941)일 것이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좌우됩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좌우되지요. 그리고 여성은 늘 가난했는데, 지난 이백 년 동안만이 아니라 태초부터 그랬습니다. 여성은 고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를 쓸 쥐꼬리만 한 기회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했던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1928년 10월, 울프는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두 강연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자기만의 방이란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자,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공간이다. 외부의 제약이 없는 이러한 공간이 있어야 창조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10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이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성의 경제 활동, 재산권, 참정권이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는 오늘날에도 물질적·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집안의 천사’가 되라는 사회적 요구와 ‘자기만의 방’에 대한 개인적 열망 사이의 갈등은 여성 대부분이 여전히 겪고 있는 이야기이다.
100년 전 그때의 강연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 『자기만의 방』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강연 형식을 그대로 가져와 화자의 사고를 따라가는 독특한 서술 방식으로, 마치 그 현장에서 울프의 강연을 듣고 있는 듯한 생생함이 매력적인 에세이이다. 가상의 화자 ‘나’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탐구하고 사유하게 함으로써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 낸다. 또한 처음으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문학 비평 안으로 끌어들여 성을 중심으로 고찰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화제가 된 페미니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보다 꼭 100년 앞서 태어난 ‘82년생 버지니아 울프’가 자신의 열띤 강연장에 다시금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끊임없이 재조명되는 매력적인 ‘열린 텍스트’
버지니아 울프가 천착했던 ‘여성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유쾌하고 재기 넘치게 다룬 『자기만의 방』은 무엇보다 출간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찬사와 비난을 아우르며 끊임없이 재조명, 재평가되는 열린 텍스트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후기에 태어난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1925), 『등대로』(1927), 『올랜도』(1928) 등 의식의 흐름 기법을 활용한 소설을 발표하며 20세기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당시 심한 차별을 받던 여성이라는 점,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점, 그리고 남자 형제들과 동일한 대우는 받지 못했어도 어쨌든 상류층의 특권을 누린 작가로 여겨진 점 때문에 『자기만의 방』은 과소평가되곤 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물결 속에서 『자기만의 방』은 선구적인 페미니즘 이론서로 재발견된다. 남성과 달리 제약이 많았던 여성의 삶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그 삶을 묘사할 언어를 찾고자 했던 울프의 글에서,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남성의 언어가 아니라 여성의 언어로 여성의 경험을 표현하는 목소리를 다시금 발견한 것이다.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기만의 방』은 꾸준히 회자되고 연구되며,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진실을 들려주는 허구의 인물들 -‘메리’이자 ‘주디스’인
우리 모두를 위하여
울프가 내세우는 화자는 허구의 인물이다. “나를 메리 비턴이나 메리 시턴, 메리 카마이클 혹은 원하는 아무 이름으로 부르세요.”라며 화자의 이름을 분명히 밝히지 않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화자와 식사를 했던 메리 시턴, 화자에게 유산을 남긴 고모 메리 비턴, 신인 작가 메리 카마이클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메리’라는 이름 때문에 비슷해 보이지만 각기 다른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다. 즉 화자인 ‘나’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 처한 다양한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인 셈이다.
또한 울프는 셰익스피어만큼 재능이 뛰어난 여동생 ‘주디스’를 가정하고, 이 인물을 통해 재능이 뛰어난 여성이 그 시대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 현실적으로 그려 낸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집안일만 하던 주디스는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받고 거부하다가 감금되고, 가까스로 탈출하여 무대에서의 삶을 꿈꿨지만 결국 권력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메리와 주디스는 비단 여성만을 뜻하지 않는다.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모두, 기록된 역사의 그늘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모두이다. 주디스의 삶은 비극으로 점철되나, 이와 대비되는 ‘메리 카마이클’이라는 무명작가를 통해서 울프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오백 파운드를 주고 자기 마음을 이야기하게 하고 지금 쓴 것의 절반을 덜어 내게 하면, 머지않아 좋은 책을 쓸 거야. 나는 메리 카마이클이 쓴 『생의 모험』을 책장 끄트머리에 넣으며 말했습니다. 그녀는 시인이 될 거야, 백 년이라는 시간이 한 번 더 지나면.” -본문 중에서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이 시대의 메리 카마이클은 과연 시인이 되었을까. 현재 문단을 빛내고 있는 여성 작가들을 본다면 결코 요원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100년 전 울프의 이야기가 아직도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는 것은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이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성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자기만의 방』을 펼쳐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를 따라 그 답을 함께 사유해 보기를 바란다. 그 깊고 진지한 사유의 공간으로 당신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