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엔 과연 어떤 힘이 있을까? 어떤 이야기는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 어떤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뜨게 하며, 슬프게도 하고, 또 분노하게도 한다. 이처럼 진정한 이야기에는 분명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한국 전기체 소설(傳奇體小說)의 효시인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작품마다 하나같이 비범한 인물이 등장하여 현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기이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이야기들은 독특한 상상력을 한껏 펼치면서도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더불어 인간성에 대한 강한 긍정을 담고 있다.
작가 강숙인은 『금오신화』를 다시 쓰는 과정에서 원작자인 김시습을 불러내어 또 다른 이야기를 겹치고 또 새로이 펼쳐 보인다. 액자 속의 그림처럼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고, 선명한 그림이 보이는 캔버스 바탕에 또 다른 그림이 숨어 있는 것처럼 이야기 너머에 또 이야기가 있다.
“어찌 보면 사람들의 일생이란 저마다의 이야기책을 써 나가는 과정일 수도 있는 거다. 그 이야기가 의미가 있는지, 의미도 없이 타인들에게 분노만 일으키는지, 아니면 재미도 없고 지루하기만 한 이야기인지는 각자 어떻게 살아 나가느냐에 달린 것이겠지.” -본문 중에서
조선 초기의 천재 문인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의 삶은 세조의 즉위와 단종의 죽음으로 마무리된 계유사화(癸酉士禍)와 단단히 얽혀 있다. 때를 만나지 못해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원통히 세상을 떠난 어린 왕의 애틋한 이야기는 『이야기는 힘이 세다』를 통해 우리 앞에 다시 소환되고, 계유사화로부터 시작된 시대와의 불화와 불의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평생 안고 살았던 김시습은 비로소 이야기 속에 자신의 삶을 담담히 내려놓는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의 바탕에 숨겨진 슬픈 이야기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사건들 중 여러 매체를 통해 가장 많이 재구성되거나 재해석되는 사건을 뽑으라면 단연 계유사화일 것이다. 계유사화는 조선 초기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사건인데, 그 극적인 요소 때문에 종종 드라마나 영화로 재창작되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곤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체 소설인 『금오신화』를 펴낸 김시습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길을 단념하고 승려가 되었다. 5세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날려 ‘김오세’라는 별명을 받을 만큼 장래가 촉망되던 그는 승려가 되어 한반도 이곳저곳을 방랑한 뒤 5편의 이야기를 써 냈는데, 그것이 바로 『금오신화』이다.
김시습은 왜 이야기책을 지었을까? 『이야기는 힘이 세다』는 김시습이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부당함과 단종의 억울함을 자신이 창작한 『금오신화』에 녹여내어 제자인 ‘선행’에게 가르침을 주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계유사화로부터 시작된 불의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슬픔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치유하고, 잘못 알려진 사건들에 대한 진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힘을 굳게 믿었기에,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썼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