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설화, 무협, 로맨스가 결합된 흥미진진한 이야기

김자환 작가의 『여우고개』(푸른책들, 2006)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발발 즈음의 여수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장편동화이다. 해안 마을마다 왜구들의 노략질이 빈번히 발생하자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지배계층으로 인해 고통받던 백성들이 자신들의 삶터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돌성을 쌓는 이야기를 바탕에 깔고 있다. 김자환 작가는 머리말에서 ‘여수엔 석창성, 호랑산성, 금성 등 많은 돌성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어요? 그 옛날 왜구들의 침략이나, 임진왜란 때 우리 삶터를 우리 힘으로 지켜 냈다는 증거예요.’라고 말하며 그 옛날 여수 지방 사람들이 보여 주었던 건강한 생명력과 강인한 정신에 존경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힘은 무엇보다도 구미호에게 아버지를 잃은 묘남과 구미호의 딸 은빛 여우 미랑의 사랑 이야기이다. 서로 원수이면서도 결코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그들의 복잡미묘한 관계 설정이 독자들의 마음을 붙들고 한시도 놓아 주지 않는다. 여기에 묘남과 쌀례가 쌍검을 이루어 왜인 무사 후쿠이와 맞서는 데에 이르면 한 편의 무협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긴장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짓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이 작품은 역사물인 동시에 로맨스이며, 무협물인가 하면 설화로도 읽을 수 있다. 치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배경 묘사와 속도감 있는 전개 속에 등장인물 저마다의 비극적인 운명이 펼쳐진다.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만만치 않은 주제가 자연스럽게 용해되어 있는 이 장편동화는, 교육적인 목적을 앞세워 교훈적인 의미를 작품의 전면에 노출하는 데 급급하거나, 아무런 주제의식 없이 가벼운 호기심만을 유발하는 데 그치는 많은 동화들과 확연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가볍고 즐겁기만 한 이야기에 질린 독자는 물론, 옛날이야기는 시시하고 역사책은 무겁다는 선입견을 지닌 어린 독자들에게도 권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