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조선시대에 2차례 일본의 침략을 받은 전쟁이다. 임진년부터 정유년까지 7년이란 시간동안 치룬 임진왜란은 당쟁과 평화의 지속으로 국방에 소홀했던 틈에 일본의 대규모 침범을 당 조선은 경제적, 정치적, 문화재 약탈 등 수난을 겪여야만 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징비록』 은 조선 중기 문신 유성룡이 7년 간의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한 책 "징비록"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마지막 판본을 정리해 놓았다.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따르면서 세상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모른 채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 되리라는 안일함에 빠져 국방에 소홀히하고 세력다툼에 열을 올리며 우물 안 개구리로 정치를 펼치고 있었다. 반면 일본은 봉건적인 지배 형태가 위협받기 시작할 무렵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등장하여 혼란기를 수습하고 전국시대를 통일하며 세계를 정복하리라는 야망을 표출했다.
부산앞바다까지 일본이 침략해 들어왔을 때에야 알았다는 그 당시 조선의 상황, 임금도 대신도 군대도 우왕좌왕하는 사이, 일본은 우리의 한반도를 휩쓸기 시작한다.임진왜란은, 조선의 허술한 국방력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전쟁, 나라를 위한 백성들의 움직임과 피난을 떠난 임금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 전쟁으로 후세들의 눈물과 울분을 짓게 한다.
'왜적이 하루 이틀 사이에 한양으로 들이닥칠 것입니다.'
4월 30일 새벽, 임금의 가마가 조용히 궁궐을 빠져나갔다. 삼청의 군사들도 달아나느라 어둠 속에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혔다. 임금의 행렬이 경복궁 앞을 지날 때였다. 길 양쪽에서 백성들의 통곡 소리가 요란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징비록. 38쪽.
임금이 버린 나라, 백성이 구한 나라 '조선'은 명분을 중시하고 겉치레가 난무하며, 권력싸움으로 피바람이 유독 많았던 시기였다. 또한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시대이기도 했던 조선, 그 당시의 상황을 문신 '유성룡'의 "징비록"을 통해 전해 들으면서 참담한 기분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전쟁이 나서 백성들이 죽어 나가고, 나라의 영토가 황폐해져가고 있는 그 상황에도 행색을 논할 수 있는 여유와 서로 다른 종파라는 이유로 시기하고 있었다는 것이, 마치 현대 정치판을 보는 듯해 씁쓸하기만 하다.
백성과 나라를 지키기에 세상을 너무나 몰랐던 조선 그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수했던 수많은 의병들, 그들의 모습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당시 상황이 기록된 "징비록"을 읽으면서 답답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내준 수많은 선조들을 향한 감사함을 느낀다.
병법에 이르기를, '약한 자는 강한 자를 당할 수 없고, 적은 무리는 많은 무리를 대적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나 역시 어렵고 힘든 상황을 조선의 책임으로만 돌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한가할 때는 근본을 다스리고 위급할 때는 보이는 것부터 다스린다.'라고 했으니, 평소에는 군사를 훈련시키고 때가 되면 적을 제압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누구도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징비록. 160쪽.
조선이란 나라는 이렇게 후손들의 가슴에 아픔과 고마움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미래를 만들어가게 하는 밑거름이 되어준다. 임진왜란 당시 임금을 가까이에서 보신 재상 '유성룡'이 전쟁을 돌아보며 후회와 반성으로 기록한 "징비록"은 용기이자 후손들에 대한 예의이다. 또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대를 먼저 살아간 백성에 불과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알쓸신잡 시즌2 첫 방송의 주인공 『징비록』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세상의 빛을 보다!
지난 2017년 유시민과 유희열이 출연해 뜨거운 이슈였던 인문학 예능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시즌2 첫 방송의 주인공으로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이 자리를 차지했다. 징비록이라는 이름이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유시민 작가가 “임진왜란에 대해 『조선왕조실록』보다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뤘다”고 평가한 것처럼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와 중요성이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징비록』은 조선시대의 문인이었던 유성룡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참혹했던 상황을 기록한 책이다. 전시 재상이자 군사 및 행정의 총책임자로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던 유성룡은 전쟁의 폐해를 몸소 겪으며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 어떤 임진왜란 기록물보다 현실적이고도 총체적으로 저술할 수 있었다. 또한 유성룡은 임진왜란의 결과를 조선의 입장에서만 다룬 것이 아니라 전쟁의 아픔을 겪은 감정을 배제하며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저술했다. 당시 부패한 조정의 권력 다툼과 당쟁의 발생, 일본의 침략 가능성에 대한 안일한 태도 등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미리 전쟁을 대비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의 자세도 나타난다.
이렇게 우리 역사의 큰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징비록』은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과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임진왜란 같은 전쟁은 옛말이지. 지금은 정보화 시대야!”라며 다소 심드렁한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물론 지금은 옛날처럼 정복 전쟁이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여전히 모든 나라는 국가체계를 이루고 있으며 안보와 외교는 한 나라의 중요한 밑거름이다. 따라서 우리의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될 수 있으며, 『징비록』이 가지는 가치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이에 보물창고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원본 『징비록』을 시간과 사건별로 재구성해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징비록』을 출간했다. 『징비록』이 전하는 깊은 반성과 가르침의 메시지는 우리나라를 이끄는 미래의 주역이 될 우리 청소년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 임진왜란의 총체적 기록문
유성룡이 남긴 교훈 “치욕의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1592년 당시 조선은 100년이 넘도록 약탈이나 전쟁이 없는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의 지배층은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이나 통신사 황윤길의 경고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결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리 없다고 단정한 것이다. 서애 유성룡은 전쟁을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전쟁은 미리 대비하면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치욕의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자 했던 유성룡의 진심 어린 반성과 뉘우침이 그대로 녹아있는 임진왜란 기록물이 바로 『징비록』인 것이다. 이후 1969년에 『징비록』은 그 가치가 대단하며 후세에 널리 알려야 하는 사료로 판단되어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징비록』의 위대함은 우리나라 밖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징비록』은 일본과 중국에서도 간행되어 널리 읽혔다. 이 사실은 『징비록』이 기록문학으로서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으며 나아가 조선과 일본, 명이라는 세 나라의 입장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종합적으로 담아내고 있음을 방증한다. 임진왜란 전란사를 구체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기록한 거의 유일한 사료이기에 역사를 배우는 청소년들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징비록』을 통해 제대로 된 역사 지식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징비록』은 무려 400년 전에 저술되었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과 가치를 담고 있다. 바로 한 나라의 위기 상황에서 권력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며, 어떻게 일반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 말이다. 지금도 자연재해나 화재, 다양한 사건 사고들이 예고 없이 일어났을 때 국가가 제대로 된 조취를 취하지 못해 국민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예방과 대비책의 마련이 중요할 것이다. 유성룡이 전하는 교훈을 한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넓게 바라본다면, 단순히 전쟁에 대한 참회나 회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지배층이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현재와 미래에서 모두 본받을 수 있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징비록』은 훗날 우리 청소년들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성숙한 가치관의 토대를 마련해 줄 것이다.
주요 내용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이어진 7년간의 전쟁인 임진왜란의 참상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당시 조선은 오랫동안 전쟁 없는 안정된 정권을 이루고 있었으나, 계속된 당파 싸움으로 인해 국정이 혼란스러워졌다. 그 틈을 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였고, 전시 재상의 자리에 있었던 유성룡은 지배층과 백성, 조선의 땅 곳곳에 들이닥친 침략의 비극을 직접 지켜보았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총체적인 기록을 저술할 수 있었다. 방대한 분량의 원본 『징비록』을 시간과 사건별로 읽기 쉽고 흥미롭게 재구성하였으며, 유성룡이 전쟁을 겪으며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담은 산문 형식의 글인 「녹후잡기」도 함께 수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