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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간평가단] 『너를 읽는 순간』 세상의 모든 영서들에게 진짜 어른, 당신이 되어 주세요 2020-03-19 16:28:12

‘영서’라는 한 소녀를 만났어요. 말수가 없는 듯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잘도 하는, 웃을 줄 모르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소리내어 웃을 줄 아는, 기다리기 하나는 자신있는 것처럼 보여도 몸 속 깊이 자리한 그리움이 외로움을 이겨내는, 가엾은 듯 하지만 가엾기만 한 것은 아닌, ‘영서’라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되었어요.

연아는 처음으로 이종사촌 영서를 만났어요. 있는지도 몰랐던 엄마의 동생, 외삼촌의 딸이래요. 함께 방을 쓰게 된, 고모네 집으로 오게 된 진짜 이유는 잘 모르지만 고집도 세고, 낯선 곳에 와서도 혼자서 산책을 갈 줄도 아는, 말도 웃음도 없는 이종사촌 영서가 연아는 자꾸만 신경쓰여요. 그리고 말끝마다 ‘미안해’라고 하는 영서와 친구가 되고 조금은 가까워졌다 싶었어요.

그러나, 영서는 행복한 순간을 적는다는 일기장만 남겨두고 이모네집으로 떠났어요. 함께 본 저녁 노을을 행복한 순간으로 꼽은 영서, 연아는 영서의 일기장에 “행복 읽는 책”이라는 새로운 제목을 달아 영서를 가슴으로 안아요.

영서는 이모와 버스에 올라요. 아빠는 교도소에 가고, 엄마는 영서를 두고 떠나요. 이모도 엄마와 연락이 안 되기는 영서와 마찬가지에요. 형편이 어려운 데도 피붙이라는 이유로 영서를 거둬야 하는 이모의 마음도 편치 않고, 이모의 모습을 보는 영서의 마음도 편할리는 없지요.

어릴 땐 나이만 먹으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면 어떤 비비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견뎌내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불안하게 흔들리는 경우가 더 잦더라. 도대체 언제쯤이면 어지간한 일에는 끄떡도 안 하는 진짜 어른이 되는 걸까. 그런 시점이 과연 오기나 하는 걸까? 41쪽

“없다고 맘 놓고 흉보는 거예요?”

“그래, 맘 놓고 흉본다. 미워서 똑 죽겠는데 흉이라도 실컷 봐야지.”

“미워하지 마요.”

“내 맘이야.”

“그래도 미워하지 마요. 우리 엄마. 엄마 미워할 자격 나한테만 있어요.”

담담한데도 가슴을 슥 베는 어조였다.

나는 할말을 잊고 물끄러미 영서 얼굴만 바라보았다. 제 엄마라고 감싸고 드는가도 싶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그리움인가도 싶고. 생각의 갈피마다 그저 심란했다. 59쪽

영서는 혼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알아요. 영서가 가슴 속에 묻은 그리움이 그녀를 살아있도록 하는 힘이 되어주는 지도 모르겠어요. 이모는 이모부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고 떠나고 영서는 다시 혼자에요. 혼자라는 게 끔찍하게도 싫지만 영서는 받아들여요. 그것 밖에는 영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잘 아니까요. 영서는 엄마와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요. 엄마를 향한 오랜 기다림의 시작이지요.

홀로 남겨진 영서는 혼자 숨을 공간이 필요해요. 몸 하나 숨길 공간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영서는 파라다이스 모텔에서 엄마를 기다려요. 온 몸에 그리움이라는 상처딱지를 떼어내면서요. 그리고 조용하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도서관 한 켠은 영서에게 아늑하고 따뜻한 현실 속 파라다이스가 되어 깊은 밤을 보내고 싶어요. 간절하게 말이에요. 영서는 자기 한 몸 누일 안전하고 아늑한 곳이 세상에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이 서럽고 슬프지만, 조용하고 따듯한 도서관이 파라다이스가 되어 준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만 같아요.

선생님, 이란 부름이 나가려는 내 걸음을 멈췄다. 곧이어 아이의 간청이 등을 때렸다.

그냥 못 본 척 해 주시면 안 돼요?

나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저 여기 있는 거, 그냥 모른 척 해 주시면 안 돼요?

그 순간 나를 보는 아이의 눈망울에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어떤 절실함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단단하게 대꾸하고 말았다.

안 돼.

그리고 그건 나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했다. 103~104쪽

손정애 선생님.

명찰에 적힌 내 이름을 보고 읊는 것 뿐인데도 간절한 마음으로 나를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그 밤, 영서의 그 눈빛처럼.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안다는 것, 그리고 기억한다는 것. 모든 관계의 무게는 거기서부터 쌓여가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영서가 내 이름을 눈여겨보고 마음에 담는 것.

내가 영서 이름을 알게 되고 기억하게 되는 것. 113쪽

영서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 살아있을 이유와 함께 살아가요. 항상 혼자이지만 당당하고 씩씩한 영서, 우리는 세상의 많은 영서들의 곁을 지나고, 가벼운 관계를 맺지만, 그들이 가진 그리움과 외로움 속으로는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아요. 무언가 크고 거창한 것을 해 줘야 할 것만 같은, 그 마음 속에는 어둡잖은 위로와 위로 속에 가려진 동정 그리고 처지에 대한 안쓰러움이 뒤엉켜 앞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에요.

“난 지금 모텔에 살아.”

“모텔?”

[중략]

“왜 거기서 사는데?”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

“다른 데서 기다리면 안 돼?”

좀 더 안전한 곳, 좀 더 환한 곳, 좀 더 따뜻한 곳에서.

“내가 거기 있어야만 엄마가 돌아올 것 같아서. 아파서, 마음이 너무 아파서 더는 못 견디고 돌아오게 될 것 같아서. 엄마가 가르쳐 준 대로 고모네 집에 가 있으면……. 그럼 엄마 마음이 덜 아플 테고, 그러면 엄마 얼굴을 다시는 못 보게 될 것 같아서.”

부모의 부재로 혼자만의 삶을 일찍 시작한 여중생 주영서. 영서는 아파요. 그리고 외롭고 많이 그리워요. 누군가의 품에 안겨 하루라도 맘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따듯하고 행복할까요? 영서는 이종사촌 연아에게서, 편의점 알바생 진교오빠에게서, 도서관 사서 선생님에게서, 금방 등을 돌렸을지라도 잠깐의 대화로 위로할 기회를 안겨준 친구 소란에게서, 아주 잠깐은 온기를 느꼈을 거에요.

영서의 몸 속을 타고 흐르는 그리움은, 그녀에게 한번쯤 손길을 내밀었던 그래서 그녀의 웃음을 보았던 이들이라면 분명 느낄 수 있었어요. 영서가 얼마나 간절하게 혼자인 걸 싫어하고 아파하는지 말이에요. 영서의 곁에서 누군가 한 발짝만 더 가까이 와 있어도, 누군가 한 손만이라도 내밀어줬더라면, 아니에요. 영서의 고모도 연아도, 이모도 진교 오빠도, 도서관 사서 선생님도 소란이도 모두 영서의 곁에 있었어요. 다만 용기가 없었을 뿐이지요. 우린 아직 진짜 어른이 못 되었나 봅니다.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손을 내민다는 것은 위로도 동정도 책임도 아니지요. 곁에서 함께 서 주겠노라는 약속이고, 오늘이 있기에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라는 걸 함께 확인해가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함께 할 시간이 필요한 거니까요. 세상의 모든 영서들에게 영서였던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쓴 진희님의 『너를 읽는 순간』 을 통해 진짜 어른의 모습이 무엇인지, 영서의 내일은 어떤 하늘일까 함께 기다려 줄 용기를 내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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