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어른들은 모두‘어린이’였다!
손동연 시인은 머리말에서‘어린이였을 때를 까맣게 잊고 사는 어른들에게 이 동시집이 <젊어지는 샘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또 ‘어른이 되어도 동심을 품고 살아가야 할 어린 벗들에게 이 동시집이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도 말한다. 동심을 ‘모든 마음의 첫 자리요, 고향’이라고 정의하는 그의 이러한 마음은, 이 동시집을 읽는 내내 얼얼하게 와 닿는다. 그것은 그가 동심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천명의 아이’요, ‘다 자란 소년’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마음으로 들여다본 세상
연필은
산 그릴 때
쓱쓱 잘 그려요.
연필은
새 그릴 때
쓱쓱 신이 나요.
연필은
나무가 엄마거든요.
숲이 고향이거든요.
- 「연필이 신날 때」(본문 46쪽)
연필은 ‘산’과 ‘새’를 그릴 때 신이 난다. 어른들은 그걸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신이 나서 ‘엄마’와 ‘고향’을 그리고 있는 연필이 보인다.
봄이
찍어 낸
우표랍니다
꽃에게만
붙이는
우표랍니다
- 「나비」(본문 45쪽)
어른들에게 ‘봄이 해마다 찍어 내는, 꽃에게만 붙이는 예쁜 우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두 쌍의 날개와 나선 모양의 입을 가졌으며, 꽃의 꿀을 먹고 사는 배추애벌레의 성충’이라고 하면 그제야 ‘아! 나비!’라고 말한다. 이런 어른들에게 손동연 시인은 아이의 마음,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리고 예전엔 틀림없이 볼 수 있었던 그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라고 권한다. 어른들에게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이 되는 이 동시들은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신나고 유쾌한 공감’이기도 하다.
모든 걸 사랑하는 동심, 그 동심을 사랑하는 동시
동심은 사랑할 줄 안다. 담벼락에 혼자 그려져 있는 아이를 위해 낙서를 하고(「낙서해도 돼!」), 목발을 짚고 힘겹게 걸어가는 소아마비 아이를 앞지를 수 없어서 지각을 한다.(「칭찬 받은 지각)」) 낙서를 하고 지각을 하는 것은 혼나야 마땅한 일이지만, ‘할아버지’와 ‘호랑이 선생님’은 낙서를 한 아이를, 지각을 한 아이를 용서한다. 그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들도 ‘모든 것을 사랑할 줄 알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참 좋은 짝』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이렇듯 동심을 자상하게 바라볼 줄 알거나, ‘빨랫줄에 줄줄이/ 아가 하얀 기저귀가/ 널렸어요.// (중략) // 엄만 그게/ 태극기 펄럭이는 것보다/ 더 가슴이 뛴대요.//(「태극기보다 더」일부)의 ‘엄마’처럼 여전히 동심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손동연 시인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할 줄 아는 동심’을 곱게 담아 내면서 또 넌지시 묻고 있다. ‘동심을 사랑할 줄 아느냐’고, ‘동심이 아직 남아 있느냐’고.
고 작고 여린 것들 다치면, 큰일일 테니 말이야.
실비 오고,
실바람 불고,
실햇살 내리고…….
봄에는
온통
가느다란 것뿐이야.
새싹,
제비꽃,
보드라운 나비 날개…….
고 작고 여린 것들
다치면
큰일일 테니 말이야.
- 「봄에는 온통」(본문 40쪽)
손동연 동시집 『참 좋은 짝』에는 작고 여린 것들이 다칠세라 비는 실비로, 바람은 실바람으로, 햇살은 실햇살로 조심스레 내려 주는 봄처럼, 동심을 보듬는 시인의 살가운 마음이 행간마다 듬뿍 쟁여 있다. 시인에게 동심은 새싹처럼, 제비꽃처럼, 나비의 날개처럼 ‘다치면 큰일’인 ‘고 작고 여린 것’들이다. 그래서 이 동시집 가득 담겨 있는 것은 어쩌면, 손동연 시인이 50년 동안 고이 간직해 온 ‘동심’일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 정겨운 이 동시집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그야말로 ‘참 좋은 짝’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