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모아이 석상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첫째 소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경'이란 주제에 맞는 책을 고르는 과정에서 발견하여 읽게 된 이창형 작가의 《그 섬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통해서였다.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이스타섬의 모아이 석상, 석상을 만들게 된 이유와 만들어진 과정, 그것으로 인해 인간의 삶에 일어난 변화를 전달하는 동화책으로, 읽는 동안 인간이 가진 권력의 힘과 욕망 그리고 이기심이 얼마나 큰 절망을 알게 하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인류학 자료 보관소에서 발견하여 작가 친구를 위해 기꺼이 복사해 온 기록지를 받아든 것으로 『사라지지 않는 노래』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기록지의 마지막에 새겨진 '기록자의 말'에 작가의 마음은 흔들렸고, 기록지가 주는 사실과 소설만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사실을 모아 영역을 넓히고자 한, 권력을 휘두르고자 한 인간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조용한 섬에 이방인의 배 3척이 들어온다. 벌써 일곱번 째이다.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왔는지를 짐작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주어진다. 이방인들의 손에 들린 새로운 물건과 음식 그리고 음악은 섬이란 공간 속에 머물러 있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하다. 이방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 했다. 이방인들의 속내를 알아채지 못 했기 때문이다. 또 다시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함을 잘알고 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는 여러 사제들이 잘 아실것이오. 우리 부족에 전해 오는 오랜 말씀 중 하나는 '잔잔한 물결에 배를 띄우라'는 것이오. 저들이 잔잔한 물결이면 얼마나 좋겠소만, 우리는 저들의 뜻을 알수가 없소. 그리고 저들은 마음만 먹으면 도저히 우리가 감당할수 없는 무서운 파도로 우리를 덮칠 수 있소. 우리 섬의 역사가 그걸 잘 보여 주고 있지 않소. 우리에게 오는 물결이 정말 잔잔한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배를 띄우지 말고 조용히 있어야 할 것이오." 37쪽
'회색 늑대족'의 공격은 '붉은 곰족'을 흥분케 하였으며, 오히려 회색 늑대족을 위기에 처하게 하고 마는 결과를 낳는다. 희망을 잃은 회색 늑대는 성채와 가족을 버리고 소수 인원만 배에 태워 바다로 향하고, 그들은 또다른 부족의 도움으로 그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나와 다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가지고 있는 것을 고스란히 나눠주는, 자연이 주는 것들을 감사하게 구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평화로움은 더이상 회색 늑대족에게는 매력적이지 않다. 이제 그들이 그동안 행해 왔던 뺏고 뺏기는,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권력만이 누릴 수 있는 희열에 목말라했다. 은혜에 대한 고마움도 힘보다 약하며, 평화 또한 지배하고 싶은 욕망보다 힘이 없다는 것을 그들의 손에 들린 창과 칼이 대신해 준다.
물고 뜯으며 권력을 휘두르는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많은 양의 식량이 되어줄 것만 같았던 자연은 황폐해져갔으며, 피폐해진 삶은 지배당하는 자의 마음속에 증오와 분노를 키워낸다. 지배하려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함께 하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그들은 항상 서로를 견제하고 뺏고 뺏기는관계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긴 세월동안 전쟁으로 그들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삶 속에서 오늘도 서로를 향한 칼날을 거두지 못한다.
이방인들의 배를 불러들이는 것이 저 거대한 석상들이라는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바닷가에 엄청난 높이로 서 있는 석상들은 먼 곳에서도 눈에 잘 띄었고, 근방을 지나는 배에게 뿌리치기 힘든 유혹의 대상이 되었다. 저 석상들만 아니라면 섬은 이방인들의 시선을 피해 평화로울 것이다. 54쪽
무인도 섬으로 알려진 이스타섬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아이석상은, 많은 이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추측되는 다양한 원인을 찾게 만들며, 역사적 기록을 파헤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한다. 섬 둘레를 가득 메우고 있는 거대한 석상은 권력을 쥔 자와 권력을 빼앗긴 자가 누구인지 선명하게 보여주며, 인간의 욕심이 결국 인간을 파멸시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증거물이 아닌가 싶다.
이방인의 등장은, 그들만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 살아가는 한 부족을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었으며, 부족을 이끌 다음 세대를 노예의 삶으로 전락시킨다. 문명의 발달이 가져다 준 이기심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것을 빼앗아도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발상과 가진 것을 이용해 더 가지려는 권력의 힘은 결국 인간만이 가진 악행이 아닌가 싶어 씁쓸함이 밀려온다.
앞으로 누가 살아남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남아 있는 자들이 우리들의 문자와 역사를 보존하게 하려면 그런 식의 구송회를 계속 열어 이야기를 익히게 하는 수밖에 없다. 비록 문자를 해독하는 연습은 불가능하지만 구송을 익힌다면 그 구송을 기록한 문자판을 읽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216쪽
역사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한다. 가진 자와 뺏긴 자, 이것은 결국 모두를 파멸시키는 것이며, 우리가 진실로 얻고자 하는 것을 잃게 하는 우를 범하게 한다는 것을.
책장을 여는 순간부터 닫는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이야기 『사라지지 않는 노래』 는 인간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이면을 솔직하고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독자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혁신적인
‘영 어덜트 소설’의 등장!
최근 몇 년 사이에 ‘영 어덜트 소설’이 독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이미 영미권을 비롯하여 해외에선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넓은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영화ㆍ드라마ㆍ뮤지컬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이 장르가 국내 독자들에게도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대중적으로 큰 흥행을 한 『헝거 게임』,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비롯하여, 『플립』,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 등 잔잔한 감동을 준 작품에 이르기까지 판타지, SF, 미스터리, 로맨스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영 어덜트 소설’이 읽는 재미뿐 아니라 보는 재미까지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에선 ‘청소년소설’이라는 분류로 한정적인 독자들에게 읽히는 작품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주인공의 굳이 청소년이 아니라도 모험, 고난, 갈등, 사랑 등을 겪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영 어덜트 소설’은 이미 세대를 뛰어넘어 폭넓은 독자층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완득이』, 『유진과 유진』 등 국내 작가들의 작품도 수십만의 독자를 확보하며 성공작으로 꼽히고 있지만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는 가운데, 배봉기의 『사라지지 않는 노래』는 가히 독자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혁신적이고 차별성 있는 ‘영 어덜트 소설’의 등장이라고 할 만하다.
장편소설 『사라지지 않는 노래』는 2009년에 푸른책들의 청소년문학 시리즈로 처음 출간되었으나 “청소년문학이라고 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틀을 훌쩍 뛰어넘은 혁신적인 작품이다. 세계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히는 모아이 석상의 비밀을 소재로 삼아 인류사와 인간사까지 꿰뚫는 큰 스케일과 만만찮은 깊이를 지닌 작품이다. 인간의 파괴적 욕망과 그것을 극복했을 때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 평화를 배치해 보여준다.”(한겨레)는 평을 받으며, 세대를 뛰어넘어 폭넓은 독자를 확보할 ‘영 어덜트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작품으로 꼽힌 바 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현재, 2019년에 푸른책들의 문학 임프린트 에프(f)에서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역사소설로 새롭게 선보이게 되었다.
낯설고 먼 시공간, 남태평양의 고도(孤島) ‘이스터섬’에서 펼쳐지는
기이하고도 놀라운 이야기
세계 미스터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은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언제나 의문을 자아내는 대상이기도 하다. 소설 『사라지지 않는 노래』도 작가가 ‘우연히 본 몇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늘로 우뚝 솟아 아득하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거대한 석상들. 해안을 따라 나란히 늘어선 그 석상들’이 문득 작가에게 ‘이런 질문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저들은 어떤 희망으로, 무슨 꿈으로, 세계적인 불가사의로 꼽히는 석상들을 만들고 세웠을까?’
작가는 ‘그 석상들이 던진 질문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이 펼쳐놓은 대답’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하지만, 그 이야기는 우리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진폭과 깊이로 출렁이며 독자들에게 기이하고도 놀라운 세계를 열어준다.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스터섬은 약 1,60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었다. 이미 400~ 700년에 최초의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던 당시의 이스터섬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가 평등했으며 필요 이상의 사냥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로 과일의 열매를 따 먹으며 자연과 평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폭풍우에 떠밀려 온 ‘회색 늑대족’이 표류하게 되면서 이 섬의 역사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장이족(長耳族)’과 ‘단이족(短耳族)’으로 분리된 섬의 부족민들은 ‘지배’와 ‘피지배’의 전복과 반복을 거듭하면서 핏빛으로 점철된 모아이 석상들을 무작위로 만들어 내고, 욕망에서 피어난 석상들은 그 무거운 몸으로 이스터섬 부족민들의 삶을 짓누른다. 그 결과, 오늘날 이들의 뛰어난 문화와 언어는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 줄기 빛처럼 남아있던 기록이 ‘사라지지 않는 노래’로 잔잔히 울려 퍼지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스터섬에 현존하는 거대한 모아이 석상을 인간의 과도한 욕망이 빚어낸 파괴적 상징물로 그려 내며, ‘장이족’과 ‘단이족’이 처한 비극적 운명을 통해, 오늘날 개개인의 욕망을 최우선으로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있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또한 그 비극적 운명을 마침내 극복하고야 마는 희망과 사랑의 이야기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가치와 잃어 버려서는 안 될 ‘아름다운 꿈’을 노래한다.
다소 무겁고 심도 있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는 작가답게 힘 있는 문체, 빠른 전개, 극적인 구성으로 기이하고도 놀라운 가상의 역사를 생생한 허구로 구축해 낸다. 독자들은 허구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생생함에 압도당하며 마음을 온통 빼앗기지 않을 수 없다.
작품 내용
어느 날, 작가는 오랜 친구에게서 이 소설의 바탕이 된 ‘기록’을 전해 받는다. 소수 부족의 언어를 연구했다는 언어학자의 이 기록은 이스터섬의 거대한 모아이 석상에 관련된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작가는 이 놀라운 기록을 생생하게 살려 내어 먼 훗날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낯선 시공간으로의 여행이 될 수 있는 이 작품을 겹 액자 형식(제일 밖에 소설을 도입하는 작가의 이야기와 기록자의 말이 있고, 그 안에 족장이 겪은 현재 진행의 이야기, 그리고 가장 안 쪽에 이스터 섬의 비극적인 역사가 들어 있다)을 취해, 독자들이 그 핵심에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파고들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과거 이스터섬에서 함께 살아온 장이족과 단이족의 비극적인 역사는 물론 마침내 그들이 찾아낸 평화의 노래, 그리고 어렵게 평화를 찾은 그들을 침략하여 비참한 노예로 만들어 버린 우리 인류의 숨기고 싶었던 역사까지. 애초에 건조한 서류 뭉치였던 기록에서 깨어나 마침내 깊은 울림을 전하는 대서사시로 변모하여,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다.
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10,620네버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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